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지난 기고에서 소개한 뉴욕시의 숨겨진 역사이자 네이버후드인 세네카 빌리지에 이어 본 기고엔 뉴욕시 파이브 포인츠 지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2002년 개봉한 1800년대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현재 세계 최고 도시로 성장한 뉴욕시의 기틀을 제공한 뉴요커의 진정한 강인함을 보여주며, 특히 2001년 911 테러로 절망과 슬픔에서 재기하고자 노력한 당시 분위기에서 뉴요커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일깨우며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반적으로 뉴욕시의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악명 높은 지역은 1970년대 타락한 문화로 점철된 타임스퀘어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1800년대 파이브 포인츠이다. 전성기 시절, 전 세계 슬럼 중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과 갱, 도시폭동 등 만연된 폭력과 범죄로 악명 높았으며, 이는 생존을 위한 뉴요커의 치열했던 이민과 인종 갈등의 역사를 반증한다.

파이브 포인츠는 현재 맨해튼 시빅 센터와 차이나타운 사이에 있는 콜럼버스 파크 인근에 위치했으며, 오랜지, 안토니, 크로스 등 3개의 가로가 교차하여 5개 포인트를 형성함에 그 지명이 유래됐다. 이 지역은 원래 콜렉트 판드라는 연못으로 당시 뉴욕시의 주요 수원이었으나 도시 확장에 따라 인근에 양조장, 제혁소, 도살장 등이 입지하여 심각한 환경오염에 노출되어 1811년에 매립됐다. 제대로 설계되지 않은 매립지는 메탄가스 방출과 하수시설의 부족으로 지면과 건물 기초가 침하됐다. 비포장 도로는 배설물이 뒤섞인 진흙 바닥이 되어 모기가 번식함으로 전염병의 온상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중산층과 상류층 주민들은 지역을 떠났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던 해방된 흑인과 1820년대 초에 이주한 가난한 아이리쉬 이민자의 집단 거주지가 됐다. 이 시절 뉴욕시와 미국 전체가 영국 개신교의 통치를 받았고 이들은 지역의 범죄와 타락이 인종적 혼합에서 촉발되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 파이브 포인츠는 미국 최초의 진정한 '멜팅 팟'이라고 평가받는다. 역사상 흑인과 아이리쉬 이민자 지역사회가 갈등과 배타적 충돌을 거쳐 동거함은 현재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예로 탭댄스는 흑인 댄서들이 아이리쉬 지그를 전통 아프리카 댄스에 적용해 유래했다.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인종적 교류를 통해 새로운 형식의 춤과 음악을 만들었지만, 뉴욕에서는 이들 간의 경쟁과 교류로 멀리는 재즈와 로큰롤의 선구자인 뮤직홀 장르의 탄생에 기여했다. 이후 아이리쉬 지역사회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부를 축적하여 더 나은 지역인 부루클린의 베이리지, 퀸즈의 벨하버 등으로 이주하였다. 흑인 지역사회는 웨스트 사이드, 할렘 지역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우스 브롱스로 이주했다. 이들의 이주 후, 185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가 정착하여 리틀 이탈리를 형성하였고, 1880년대 서부의 중국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이주하여 현재의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게 됐다.

오늘날 파이브 포인츠가 위치했던 로어 이스트 사이드는 주거 및 업무시설, 관공서, 맛집, 번화한 밤문화 등으로 매력적인 장소가 됐다. 다채롭고 이국적인 차이나타운, 리틀 이탈리와 함께 시빅 센터와 교정국 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들은 지역이 가진 과거에 대한 간접적인 흔적이다. 현재 파이브 포인츠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최근 그 역사를 기념하는 거리 표지판을 설치하기로 한 시의 결정은 오랫동안 잊혀진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아가 파이브 포인츠의 역사는 문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성장한 뉴욕시가 가진 에너지의 원천이며 네이버후드로 지칭되는 다양한 특색을 가진 지역 구성의 분기점을 제공한 역사적 마일스톤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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