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조 대전과학고등학교 교사

유난히 차멀미가 심해서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다. 남들은 왜 그런 시골 학교를 가느냐고 의아해 했지만 당당히 살리라 다짐했다. 그 결정은 옳았다. 그곳에서 내 삶에 영향을 준 선생님을 두 분이나 만났다. 먼저 국어선생님. 선생님의 판서는 환상 그 자체였다. 그 눈부신 한자 필체에는 맹신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필기할 때마다 선생님 필체를 흉내 내느라 정신 없었다. 그리고 수학선생님. 가운데 가르마가 인상적인 총각 선생님이셨다. 수업 한 시간 동안 분필 한 통을 모두 써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열정적인 수업 내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졸업앨범에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낙야)"라고 썼다. 물론 그때는 뜻풀이만 가능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았다. 고교시절의 두 선생님을 닮고자 노력하면서 의욕 하나로 버텼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설 때는 뒤통수가 따갑지 않은가 반문했다. 학생들이 교무실로 찾아오면 벌떡 일어나 함께 서서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내 자신은 교사보다는 학생 쪽에 더 친밀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비춰지는 내 자신을 떠올린다. 두 분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전과 달라진 것은 교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의자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암체어로 말이다. 나는 학생용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고, 학생들은 교사용 암체어에 앉도록 한다. 나를 찾아온 학생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다. 그래서일까. 차츰 눈높이 상담에 익숙해지면서 라포르(rapport)를 형성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학교에서 교단을 치우고 상하로 움직이는 칠판을 설치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심지어 상아탑에서는 계단식으로 된 안락의자에 학생들이 앉고 가장 낮은 위치에 교수님들이 서서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제 간의 눈높이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의 즐거움'이라고 한 맹자의 글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월이 갈수록 선생님들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다중매체까지 포함하면 눈의 숫자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그렇다고 함께 높아지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분명 아니다. 오히려 그 눈을 두려워하면서 열정을 바치는 것, 그 속에 답이 있다.

제인 블루스틴의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에 이런 글이 있다. "나는 교사다. 교사는 누군가를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여기엔 마법이 있을 수 없다.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없으며 바다를 가를 수도 없다. 다만 아이들을 사랑할 뿐이다." 요즘은 두 분 선생님처럼 아이들 안에 있는 빛나는 1%를 믿어주려고 노력하며 산다. 박재조 대전과학고등학교 교사

박재조 대전과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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