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 대한치과의사협회 전 홍보이사
이미연 대한치과의사협회 전 홍보이사

나는 추리소설의 긴장감을 좋아한다. 탐정이 단서를 통해 추론을 하고 범위를 좁혀가면서 기다리다 마침내 증거를 범인 앞에 제시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순간의 희열은 기다린 보람을 준다. 치과의사의 삶도 탐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환자가 준 정보를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검증한다. 치과의사의 어려운 점은 이제부터 다시 어려운 임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치과의사는 전략을 짜야 한다. 범인(병소)을 붙잡아서 처리할 방법만이 아니라 어지럽혀진 마을(구강)을 재건할 방법까지 연구한다. 치의학적 지식은 물론이고 환자의 건강상태와 연령,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일정, 그리고 개인적인 성향의 파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환자가 의사를 얼마나 믿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 작전수행은 의뢰인인 환자가 최고승인권자로 참여해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서울에서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먼저 댁 근처에서 진찰을 받고 기다려보자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너무 아파져서 기왕지사 딸 치과를 찾아오셨단다. 이미 어금니 뿌리쪽이 크게 붓고 염증이 명확하여 치료 방법도 바로 정해졌다. 근관치료와 크라운 수복을 하면 되었다.

그럼 왜 지켜보자고 하셨을까. 첫째, '우리한' 통증이나 '어딘가의' 불편감 같은 주관적인 정보(징후)는 사람마다 감수성이 달라 객관적 수치로 파악하기 어렵다. 둘째, 해당 치아는 이미 크라운 상태이며 변연이 깨끗했다. 이가 다시 썩은 탓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면 치근의 구조적 문제가 의심된다. 이 경우 정석대로 근관치료와 크라운수복을 해도 치아의 기대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후속치료를 하기보다 지금 단번에 빼는 치료를 선택하고 싶은 의향이 있을 경우도 감안해야 한다. 셋째, 처음엔 증상이 명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침습적 치료 결정에 앞서,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지 시간을 두어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치과의사는 탐정이자 가설을 입증하는 과학자이나, 우리의 필드는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장 병소를 제거하는 것도 신중하게 기다리는 것도 치료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믿고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여러분의 치과의사들은 믿고 맡겨주실 때 일을 더 잘한다. 이미연 대한치과의사협회 전 홍보이사

이미연 대한치과의사협회 전 홍보이사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