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미술관 소장품 소개

성능경作 사과, 1976, 작가 제공.
성능경作 사과, 1976, 작가 제공.

성능경(1944-)은 1970년대에 등장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서, 사진이나 신문지를 이용한 설치 및 퍼포먼스 작품 발표를 통해 전 생애에 걸쳐 한국적 개념미술의 창조에 매진해 왔다. 그 결과 성능경의 예술세계는 모더니즘의 전성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거쳐 동시대 미술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기성 권위에 도전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몸과 사진 등을 주요 매체로 삼아 사회 속 개인의 일상이라는 주제를 반미학적으로 재현하는 특징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1975년은 성능경의 예술세계에서 사진 작업이 등장한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작가는 이 해에 열린 《제4회 ST전》과 《제2회 대구 현대미술제》에 <액자>, <사진첩>, <여기>, <자>, <거울> 이상 다섯 점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모두 1974년에 구매한 니콘 F2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작품이었다. 성능경은 1976년에는 1975년의 사진 작업에서 더 나아가,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에서 열린 《제2회 서울 현대미술제》에서 <사과>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사과 먹는 과정을 아홉 번 촬영해 17장 인화한 것으로, 당시 같은 장면이 두 장씩 되도록 전시장에 설치했다. 그는 또 <사과> 앞에서 촬영한 본인의 사진을 훗날 작품의 마지막 장으로 사용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베토벤이 교향곡 8번을 '오 마이 러블리 8번!'이라고 말한 것처럼, 애착을 가지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사과>는 총 17장의 사진 작품으로, 행위의 프로세스를 기록한 작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사과를 먹는 행위를 보여주며, 그 과정을 시퀸스로서 보여주는데, 성능경은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더 많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더 풍부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잠시 결론을 유보하고 과정에 집중하는 행위, 이게 아마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행위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그와 더불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의 연속이지 않습니까? 마치 우리의 삶의 모습과 삶의 한 단면 같은 것이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런 과정을 축적해 나가다 보면 내 삶이 죽음으로써 완성되듯이, 예술도 결론 없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과정만 축적함으로써 예술을 집대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사과 먹는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과의 테두리를 그렸습니다. 아직 먹지 않은 동그란 사과의 모습부터 다 먹고 난 이후의 씨방만 남은 작은 모습까지. 사과의 먹는 과정을 확인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마커펜으로 테두리를 둘렀습니다. 그것은'사과 먹는 행위를 강조하기 위함'으로서의 드로잉입니다."

성능경의 <사과>(1976)는 현재 《한국 실험미술 60-70년》의 순회전인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Guggenheim, New York) 의 전시를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여중이다. 김민경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민경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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