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전 세계 숲에는 유독 떡갈나무가 많은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많이 심은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떡갈나무는 어떻게 넓은 면적에서 자생하게 된 것일까? 떡갈나무의 전파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도토리를 주로 먹는 다람쥐인데, 이들은 도토리를 자신만의 비밀장소에 보관하고, 나중에 찾아 먹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다람쥐의 지능 문제로 종종 그 비밀 장소를 찾지 못해 상당량의 도토리들은 땅속에서 발아해 또 다른 떡갈나무로 성장하거나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다람쥐의 지능이 조금 더 높았다면 지구상의 떡갈나무는 지금보다 좁은 지역에 한정돼 생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능이 부족한 다람쥐 덕분에 떡갈나무 숲의 다른 동물들도 함께 생존해온 것이다.

우리 인간사는 어떠한가? 전 세계적으로도 교육열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장래가 결정된다는 얘기가 있고, 최근에는 유치원에서 결정된다고도 한다. 유치원에서 영재캠프 등에 들어가 조기교육을 받아야만 특목고를 통해 명문대에 입학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2021학년도 서울대 수시 최초합격자 수 상위 10개교 중 6개교가 특목고이며, 나머지 4개교 역시 전국단위 자사고에서 차지했고 절반 이상이 서울 출신이라고 하니,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진학과 직접 연관돼 있고 이를 위해 모두가 강남으로 달려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교육열 때문일까? 국내에서 연간 자살하는 학생의 수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2021년까지 4년간 630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목슴을 끊었으며, 그 중 26명의 초등학생이 포함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더욱이, 13.7%의 116건이 학업 진로 문제로 자살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 인근 지역에서도 가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십대 초반에 시험 스트레스로 인해 소중한 삶을 마감하였으니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고도성장을 통해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일등만이 강조된 게 사실이다. 물론, 그 중심에 명문대 출신 일등 인재들의 기여가 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초일류 대기업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하청 중소기업들의 노고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일등들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일례로, 1997년 전국 각지에서 일등만을 뽑아 구성한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이 브라질을 상대로 3대 10의 대패한 장면을 생중계로 본 기억이 난다. 각 시군별 일등 스트라이커만 모았으니 변변한 수비수나 골키퍼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최전방 공격수는 일등이고 최후방 수비수가 꼴등은 아닌 것처럼 조직에서는 각 포지션 별 담당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이 사회 전체가 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인적자원에만 의존하는 나라가 저 출산에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각 개인이 자존감을 갖고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일등이라 착각하는 숲속 동물들은 꼴찌 다람쥐들이 마련해 준 먹이와 떡갈나무의 고마움을 알고 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재수생 16만 명을 포함해 약 50만 명이 응시했고, 전년 대비 재학생은 2만 5000여 명, 전체로는 3000여 명이 감소했다. 이들은 채점 결과에 따라 점수로, 등급으로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워지고,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해 다소간의 불공정한 출발점에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출발점에 지나지 않으며, 결승점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더욱이,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꼴찌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꼴찌도 분명 존재할 이유가 있으니,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수험생 모두가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해 자신만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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