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선임기자
김재근 선임기자

분당 서현역 사건의 피해자인 여성의 죽음이 진한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스무살의 고 김혜빈양은 사건 현장에서 흉기 난동범의 차에 치인 뒤 뇌사상태에 있다가 25일만에 사망했다. 유족측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기억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며 김양의 이름과 사진 등을 공개했다. 미술을 전공 중인 김양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같은 사건으로 숨진 60대 고 이희남씨의 유족도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이씨의 남편은 아내가 대학 1학년 때 만난 첫사랑이라며 "이것은 차 사고가 아니라 테러"라며 엄벌을 요구했다.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전에서도 20대 남성이 학교에 들어가 흉기로 교사를 찌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유도 없이 타인을 폭행하고, 테러를 예고하는 모방범죄가 줄을 잇고 있다.

경찰이 경고 없는 실탄사격을 예고하는 등 특별치안활동을 개시했고, 지자체들은 CCTV를 확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내년도 민생범죄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렸다.

온갖 대책이 등장했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지하철 탑승을 기피하고, 중고거래도 대면이 아닌 택배 거래로 바뀌어 가고 있다. 1인점포주들은 비상벨을 설치하고 가스총을 산다고 한다.

이 범죄는 대응책 마련이 매우 어렵다. 범행의 이유가 불명확하고, 지극히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상동기 범죄의 동기로 대략 현실 불만, 정신질환, 마약류 3가지를 꼽는다. 범죄자들은 대부분 타인을 해치는데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다. 범행 과정에서 자신이 죽거나 범행 뒤에 처벌을 받는 것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상동기 범죄를 묻지마 범죄, 무동기 범죄, 절망 범죄라고도 부른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핍과 상실, 단절, 절망, 빈곤, 무한경쟁, 패배, 양극화, 부패, 질병 등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죄가 사회적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질병의 한 증상인 것이다. 예방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 못지 않게 절망을 안겨주는 사회 전반을 폭 넓게 늘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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