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문수선원' 연 '조계종 송해' 자현 스님
박사학위만 7개…"수행과 공부는 같은 것…둘 다 행복에 이르는 길"
스님의 30년 공부 에너지 내공은 '효율적인 명상'과 '유쾌한 상상력'

자현스님.


급격한 물질문화의 발전, 인간의 소외와 갈등 구조 확산. 현대사회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이런 문제를 동·서양의 고전과 지혜를 활용하면서 실질적인 수행을 통해 극복하고 시민들의 행복에 기여하겠다며 선원을 연 스님이 있다.

불교계 대표 '학승', '조계종의 송해'로 불리는 자현 스님이 최근 대전 노은동에 문수선원을 열었다. '송해'(TV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는 스님이 워낙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교육을 통해 수행과 명상법을 전하면서 붙은 별칭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명상과 인문학 확대를 위해 온라인 강의도 한다. 오죽하면 동영상 채널 이름도 '자현스님의 쏘댕기기'다.

자현 스님은 동국대 강의전담 교수, 능인대학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오대산 월정사 교무국장,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와 불교학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제게 공부란 호흡이나 운동법처럼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일입니다. 시기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자현 스님은 공부로 수행을 한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불교학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고려대 철학과, 동국대 미술사학과·역사교육학과·국어교육학과·미술학과·부디스트 비즈니스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만 총 7개다. 공부가 취미로 여겨질 정도다.

"선불교에서 수행을 '공부'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결국 수행과 공부는 같은 것이죠. 둘 다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수행은 명상을 통해, 공부는 지적인 확장을 통해 행복에 도달하니까요."

스님의 공부 에너지는 바로 '효율적인 명상'과 '유쾌한 상상력'이다. 하면 할수록 공부의 속도와 즐거움이 빨라진다.

그런 스님도 공부는 재미가 없단다.

"공부요? 재미없어요. 그냥 심심해서 하는 것 뿐이죠.(웃음)"

스님이 최근 유성 노은동에 문을 연 문수선원은 '인문학과 명상연구소'를 연계한 명상을 통한 수행체험 선원이다. 시민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비롯해 명상 문화 확산을 통해 종교적 진입 장벽을 낮추고, 현대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쉼터 역할을 한다. 스님이 직접 울산에 이어 두 번째로 개원한 곳이다.

선원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인문학·명상 문화 관련 강의를 비롯해 각종 세미나 개최 및 후원도 한다. 인문학, 동양사상, 명상 서적도 간행한다. 간혹 국내외 인문학과 명상 관련 문화유적도 답사 연구한다.

자현스님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12시30분까지 1시간 30동안 대전 유성구 노은동에 있는 문수선원에서 법회를 연다. 사진=문수선원 제공

이 선원에서 명상을 통해 마음을 치유해주는 기능을 하는지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복잡한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이 마음을 자꾸 '치유'해야 한다고 해요. 그건 잘못된 겁니다. 마음이 치유받고 위안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패배자들의 생각일 뿐이에요. 마음은 치유의 대상이 아니에요. 치유할 게 있다면 이미 마음이 아닌 겁니다. 그보다는 내면을 정돈해서 현실을 관통하는 삶의 진정한 투쟁으로 나가면 어떨까요."

현실을 관통하는 명상이 진정한 명상이라고 말한다.

"저는 명상에 두 가지 관점을 갖고 합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신장시키는 거죠. '축소의 시대'를 살아가는 연세 드신 분들께는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행복할 것인지에 대한 명상을 소개합니다."

삶에서 물러나 관조하는 명상이 아닌, 보다 적극적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며 자신의 내면을 정리해 삶의 가성비를 높이고 인생을 개척하는 명상이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명상이라는 것이다.

"저는 소수만을 위한 값비싼 루왁 커피를 만들 생각이 없어요. 제가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이들이 간편하게 즐기는 믹스커피죠. 제가 말하는 명상은 믹스커피처럼 손쉬운 방식으로 나를 극대화하는 겁니다. 이런 간편함 속에서, 내면은 물론 현실을 바꿀 수 있어야만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점심시간 때나 짬 나는 시간을 이용해 10-20분 정도 앉아서 할 수 있는 명상법도 소개했다. 이를 위해 일종의 VR(가상현실) 체험 같은 안경도 개발 중이라고 했다.

특이하게 '스님의 논문법'(불광출판사)이란 책도 냈다. 스님이 논문 쓰기 실용서를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다.

"논문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맞춤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도 중요해요. 논문이 힘든 건 나 자신을 표현하고 논문에서 요구하는 구조를 짜는데 서툴기 때문이에요. 대학원이 평균 학력이 돼 버린 나라에서 수십만 명이 논문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스님은 논문을 잘 쓰기 위해서 "완벽한 논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논문은 지성의 결과물이자 과정일 뿐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책에는 논문 설계하는 법부터 주제 정하기, 자료 구성, 논문 심사에 대처하는 법, 심지어 논문 인용지수 높이는 법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발표한 등재논문만 150여편에 달한다. 그야말로 '논문의 신'이다. 스님에게 논문은 어떤 존재냐고 물었더니 '유희'라는 답이 돌아왔다.

"논문은 내면을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즐기는 일종의 퍼즐 같아요. 딱딱한 대상이 아니라, 추리소설 같은 고급 유희라는 생각이 들어요. 논문이 어려운 사람들은 논문이라는 수단에만 몰두하고 있는 거에요. 궁극적으로 공부가 가져다주는 가치에 눈을 돌리면 수단도 유희가 되죠."

자현 스님

주로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에서 일을 보는 스님은 매주 금요일마다 대전 문수선원을 찾는다. 이날 오전 10시 예불을 진행한 후 11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법회를 연다. 많을 땐 100명 이상, 평소 50-70여명 정도 참석한다. 사전 신청을 받는 것도, 참가비용도 없다. 오고 싶은 사람들에게 개방해 운영한다. 매월 한 번씩 외부인사 초청특강도 갖는다.

스님의 법회는 유명하다. 스님의 '찐팬'이 됐다는 한 불자는 "지난 6월 월정사에서 수계법회를 할 당시 발행하는 수계첩이 8000개나 나갔고 이마저 부족해 추가 주문을 했는데, 현장 참가자만 5000명이 더 몰릴 정도로 인기였다"고 소개했다.

스님은 앞으로 불교대학을 설립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 같은 서양에서 오히려 명상 수행이 더 유행이에요. 참 아이러니하죠. 조만간 미국에 명상 수행을 할 수 있는 불교대학을 설립할 계획이에요. 곧 문을 열 겁니다."

스님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학승답게 불교 경전 중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이라는 말씀을 좋아한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진리에 의지하라는 뜻이다.

"진리에 대한 추구가 없는 사람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영원을 사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통해 현재를 관통하는 사람은 언제나 영원 속을 거니는 존재로 자유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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