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건양대병원 77병동 간호사
김선미 건양대병원 77병동 간호사

대구에서 대학 친구 4명과 함께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대전으로 올라와 2020년 3월부터 건양대병원 간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경상북도 경산과 대구에서 24년간 살아온 필자에게 처음 하는 타지생활은 모든 것이 무서웠다.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바로 사투리였다. 평소 목소리도 크고 발음이 세다 보니 주위에서 화를 낸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았다. 대구에서 같이 대전으로 온 대학 동기들과 입사 전 표준어 연습도 하며 나름 사투리를 덜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필자를 본 환자, 보호자, 간병인들은 바로 경상도 사람이냐고 물으셨고 늘 저는 소심하게 "티가 많이 나요?" 하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다" 였다. 코로나 선제 격리 병동은 특성상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할 수 없기 때문에 전화로 초기정보조사나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 신규 간호사일 때는 소심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발음으로 인해 간혹 폭언하시는 보호자 분들도 있으셨고 가장 상처받았던 말이 "조선족이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때는 너무 속상하고 위축되어 병동에서 펑펑 울었다. 필자가 일하는 병동에는 경상도 출신 의료진이 많다. 동료들은 필자가 위축될 때마다 위로해 주었고 동료 한 명은 웃으면서 "나는 탈북자에요?"라는 소리도 들어봤다며 필자를 위로했다. 동료들의 위로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이제는 경상도 사람이냐는 소리를 들으면 능글맞게 "많이 티가 나요? 저는 모르겠는데… 하하" 라며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신규 간호사로써 모든 것이 무서웠지만 동기들이 있어 버팀목이 되었다. 힘든 일을 같이 공유하고 잘 이겨내 보자고 으쌰으쌰 할 뿐만 아니라 각자 파트를 나눠 공부하고 정리해서 공유하며 스터디 모임을 가지며 공부했다.

하지만 격리병동 특성상 힘든 보호장구 뿐만 아니라 매일 다수의 입원과 코로나 결과 음성 나온 환자들을 타 병동으로 전실 보내며 하루하루가 이벤트였다. 그 탓에 잘 버텨보자고 했던 동기들이 하나 둘 사직을 하며 4명의 동기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 남은 필자는 힘든 신규 간호사 생활에 더욱 지쳐갔다. 하지만 고맙게도 옆 병동 동기들과 타지에서 같이 올라온 대학 친구들이 항상 응원해주었다. 그 덕에 힘든 티 내지 않고 더 열심히 했고 선배들에게도 점점 인정받기 시작했다. 때론 친구같이 때론 동료같이 지내는 병동 분위기 덕분에 신규 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부족한 필자는 3년차 간호사가 되었는데, 필자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배 간호사들에게 편하고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

최근 한 결핵 환자가 매일 병실에서 운동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시려고 노력하는데,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나갈 때 항상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며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게 해준다. 필자도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김선미 건양대병원 77병동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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