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3·1운동 때는 양반·상민 신분을 넘어 남녀노소가 모두가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일제 10년을 겪어보니 이대로는 더이상 살 수 없었다.

3·1운동은 농민이 앞장선 동학운동, 양반이 이끈 의병운동을 이은 한 차원 높은 민족운동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많은 인원이 참가하였다. 잔혹한 일제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투옥되거나 매를 맞는 등 처벌을 받았다.

우리는 유사 이래 최대 민족운동으로 기억하며 기리고 있다. 천안 병천면에는 해방 직후 세운 아우내 독립만세운동기념비가 있다. 유관순 열사와 19명의 순국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 시위 현장에서 숨진 분들이다. 그런데 한 명이 더 숨진 사실이 밝혀졌다. 윤모씨였다. 다른 이들보다 70여 년 늦게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윤씨는 다른 19명과 함께 기억되어야 할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목숨을 잃어가며 바로 그날 만세를 외쳤던 우리의 선조이다.

윤씨의 발굴은 2021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숨은 독립운동가 찾기'사업으로 이뤄졌다. 일제 기록 및 해방 직후의 모든 조사서를 꼼꼼히 찾은 결과다. 연구원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미 많은 도내 시군이 참여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분들을 찾아냈다. 의병운동, 일제강점기 각종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다.

일제는 독립운동으로 투옥한 분들의 명단을 해당지역 행정기관에 보관하게 했다. 이 수형인명부는 보관 연한을 넘기면 폐기처분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간혹 아직도 읍면사무소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시골 면사무소 서류창고에는 아직 먼지를 덮어쓰고 우리를 기다리는 옛 문서가 있다. 그 안에는 아직 서훈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가 숨어있다. 이들을 찾아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어떤 시군은 "우리는 예전에 조사해 본 적이 있어 더 이상 안 나올 것"이라며 미루고 있다. 그러나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다시 정확히 찾아봐야 한다. 그게 우리의 의무이다. 찾아서 그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선조가 있었음을 알려야 한다.

천안 병천면 주민들은 해방 직후인 1947년 모든 주민이 나서 만세운동 순국자 추모사업에 나섰다. 일제 치하에선 무서워 순국자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살아남아 광복을 맞았으니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200여 주민들이 성금을 냈다. 그 돈으로 기념사업을 시작했다. 기념비를 세우고, 영화제작을 지원하고, 유관순 열사 전기 출판을 도왔다.

당시 한 주민이 추모사업 보고서를 썼다. 필자는 이를 토대로 최근'1947년 아우내 만세운동기념비 건립의 역사적 의의'논문을 학술지에 실을 수 있었다. 병천면 주민들이 벌인 애국적 사업을 처음 알릴 수 있어 기뻤다.

지난해 한 방송사가 만세운동기념비 건립 의의를 떨어뜨리는 보도를 냈다. 이 비가 일제 전물장병 비석 모양을 베껴 순국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주민들은 일제가 세웠던 황국신민서사탑 비문을 갈아내고 그곳에 순국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며 전승비로 생각했다.

76년 전 위당 정인보가 지은 기념비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형제야 자매야, 선열의 핏빛이 아직껏 새롭다. 이 자취를 돌에다 새기거니와 서로들 마음에 새겨라."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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