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 전고려대 겸임교수
김병모 전고려대 겸임교수

그동안 창궐했던 코로나도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마스크 해제도 되었으니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나자고 한다. 미리 짜 놓은 일정표까지 내민다. "나야 좋지"하고 얼버무린다. 대전을 출발 서울, 평창, 울진 덕구온천, 안동 월영교와 하회마을 구경하는 4박 5일 일정이다. 아내는 여행을 제안했고 필자는 관광을 꿈꾼다.

가는 곳마다 풍미가 넘친 맛집과 관광으로 재미를 더한다. 케이블카 타고 오른 평창 발왕산의 설경은 혼자 보기 아깝다. 다음 날 오후 5시쯤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에 도착했을 때, 70대 노부부가 노을 진 산사(山寺)를 유유자적 거닐던 모습이 이채롭다. 예정된 일정에 맞춰 덕구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긴 후, 안동 월영교(月映橋) 호숫가에 걸린 달빛 밟으며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 속에 남은 여독(餘毒)을 묻은 채 모처럼 부부 여행을 이어간다.

오롯이 부부 둘만의 여행이라 소소한 의견 불일치로 티적거리는 적도 있었지만, 아내 여행 제안이 고맙다.

필자는 여행을 은근히 좋아한다. 낯선 곳에 이를 때마다 그 지역의 특색이 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곳의 호기심 때문이다. 지난 이탈리아 여행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피렌체에 들어서자 마치 중세기에 와 있는 느낌이다. 피렌체는 13세기 초 단테 '신곡'을 필두로 신(神)뿐만 아니라 인간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암흑의 시대 중세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를 태동시킨다.

뒤를 이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종탑에 올라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관측한다. 고심 끝에 그는 "우주는 지구 중심이 아니라 태양 중심으로 움직인다"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기존 정상과학을 뒤집은 것이다. 광장 주변을 둘러볼수록 갈릴레이뿐만 아니라 카사노바의 흔적과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문학적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낯선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현장의 경험과 설렘이 공존한다. 낯선 것을 넘어 새로움을 느낀 것이다.

다음으로 여수 가족여행 때이다. 여수 밤바다의 낭만과 지역 음식의 맛이다. 허기진 배를 돌산 갓김치와 싱싱한 돌문어로 채운다. 음식의 맛이 일품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장 터이고 원효대사가 수양했던 금오산 향일암(向日庵)이 있다. 험준한 고갯길을 해치고 암자(庵子)에 오르자 앞바다를 향해 비경이 펼쳐진다. 외적을 물리친 포효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은근한 여행의 맛과 관광의 풍미도 있다.

관광(觀光)은 여행의 다른 표현으로 관국지광(觀國之光)의 준말이다. '역경'에 따르면 '나라의 빛을 본다'라는 뜻이다. 관광이란 왕을 알현한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옛 유생들은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가는 것을 '관광하러 간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과거시험 중 최종 순위를 뽑은 전시(殿試)에 왕이 반드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15세기 초 삼봉 정도전 '삼봉집'에서도 관광(觀光)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 오래전부터 사용된 듯하다.

아쉽게도 관광이란 말은 여행으로 대체되고, 차에 붙은 '00 관광' 단어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언어학자 노엄 참스키(Noam Chomsky)에 따르면 "언어란 변형 생성"되기 때문에 관광이든 여행이든 개의치 않다. 다만, 의미있는 한국적 표현들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에 못내 아쉬울 뿐이다.

완연한 봄바람을 타고 코로나 고삐가 풀리나 싶더니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여행사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국외뿐만 아니라 국내의 관광지나 식당들도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다행이다. 앞으로 코로나로부터 더욱 자유로운 여행, 그리고 관광을 기대한다. 무엇보다 호기심 찾아 낯선 곳으로 다시 떠나고 싶다.
 


 

김병모 전 고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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