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기준과 잣대 불명확
충청권 패싱 당하고 소외받아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 제시를

은현탁 논설실장
은현탁 논설실장

정부의 공공기관 설치·이전과 관련한 정책 결정이 종잡을 수 없다. 기준과 잣대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비합리적이고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측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간 소모적인 유치전을 펼쳐야 하고, 영호남에 비해 정치 지형이 불리한 충청권이 패싱 당하고 소외받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경남 사천으로 결정됐고, 경찰병원 분원 설치는 대선 공약임에도 전국 공모를 진행 중이다. 육군사관학교 이전은 대선 공약이지만 주무 부처의 반발로 사업 추진이 불투명한 상태다. 우주항공청 설치에서 경찰병원 분원 공모, 육사 이전 문제까지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이런저런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주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우주항공청만 해도 그 흔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경남 사천으로 졸속 결정됐다. 우주정책의 핵심은 연구개발이고, 우주항공청 의사 결정의 상당수는 연구개발과 관련된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2032년 달 착륙과 자원 채굴, 2045년 화성 착륙도 연구개발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우주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곳에 우주항공청을 둬야 한다. 그런데도 우주 전문가들의 의견과 달리 최적의 대전이 배제되고 경남으로 낙점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 이외에 딱히 설명할 게 없다. 이는 청 단위 기관은 대전에 둔다는 정부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가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고, 경남도가 브리핑을 통해 확정 사실을 발표한 것도 석연치 않다.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도 마찬가지다. 대전은 뒤늦게 연구·인재개발 특화지구 후보지로 선정됐지만 세부 사업을 보면 우주분야 미래 선도형 연구개발, 우수 연구인력 양성 등 막연한 과제들이다. 전남의 발사체특화지구와 경남의 위성특화지구가 산업단지와 종합지원센터 구축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전은 항공우주연구원·천문연구원 등 우주 관련 13개 연구기관이 위치해 이미 연구개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기존 클러스터가 특화지구로 간판만 내거는 정도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경찰병원 분원 설립은 대선 공약과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어 지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지역공약에는 '중부권 거점 재난 전문 국립경찰병원 설립(아산 경찰종합타운)'이 명시돼 있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지난 6월 공모 사업으로 전환해 19개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1차 관문을 통과한 충남 아산, 대구 달성, 경남 창원 등 3곳은 6개월째 사활을 건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같은 대선 공약인데 우주항공청과 달리 경찰병원 분원은 공모로 변경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다.

육사 논산 이전은 더 답답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육사 이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선 캠프에서 공약으로 발표했고, 대통령직 인수위도 대선 공약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군 지휘부와 육사 출신들의 반발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방부는 금년 예산에 반영된 육사 이전 연구용역비조차 집행하지 않고 있고, 육사 출신 중심의 반대 세력은 충남도 주관 '육사 이전 국회정책토론회'를 실력 저지해 무산시켜 버렸다. 우리나라 군 통수권자의 공약을 다른 곳도 아닌 국방부가 대놓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설치와 관련해 명확한 기준과 잣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대선 공약이라 하더라도 전문가 의견 수렴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친 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무작정 공모에 부쳐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을 유발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불협화음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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