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오 한국전력공사 대전세종충남본부장
김준오 한국전력공사 대전세종충남본부장

지난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사고는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다.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서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안전'이다.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본격 시행된 바 있다. 중처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다. 최근 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지적과 법 정비 관련 이슈가 있긴 하지만, 중처법 시행을 배경으로 많은 기업들이 사업장 내 안전체계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전에서는 중처법 시행에 앞서 끼임·추락·감전 등 3대 주요재해별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고 올해를 안전사고 근절의 원년으로 선언한 바 있다. 한전 대전세종충남본부에서도 지역사회의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전관리 전담조직운영, 현장관리감독 강화, 작업자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는 경우 작업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부여, 안전마인드 확산 교육 등 안전사고 예방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전기공사현장은 얼마나 안전해졌을까? 대전의 어느 노후전선교체작업 현장의 모습은 이러하다. 추락사고 근절을 위해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이 금지됐기 때문에 작업자들이 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활선버켓차량이 투입된다.(활선 버켓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기능이 있어 감전 위험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대형 활선버켓차량이 좁은 골목을 가로막고 있으니 공사 현장 주변에서는 차량 통행 불편 및 작업 중 소음에 대한 민원이 이어진다. 이러한 민원이 계속되면 작업자들은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버켓 안에서는 전기가 흐르고 있는 상태에서 절연도구를 활용해 비접촉 방식의 전선교체작업이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작업시간이 더뎌질 수 밖에 없다. 보다 안전하면서 신속한 작업을 위해 전기공급을 중단시킨 후 작업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경우 일부 고객이 정전이라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불편함'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막상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당사자가 '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일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까지의 공교육 교과과정에 '안전교육'을 포함시키고, 16세에서 65세까지의 전 국민이 10시간의 안전교육을 받는다. 안전의식이 지나치다고까지 평가받는 독일에서는 '정전 후 작업'과 같은 상황에서 겪는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고려하는 '역지사지'의 사고가 정착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 보다 안전과 관련한 각계각층의 각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높은 관심이 보다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각자가 누군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수반되는 나의 '불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안전의식을 갖추어 나가길 고대한다.
 

 

김준오 한국전력공사 대전세종충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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