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박준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최근 세간을 뜨겁게 달군 이야기가 있다. 봉화의 한 광산에서 무너진 토사로 인해 광산 막장에 갇힌 광부가 무려 221시간 만에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건이다. 광산 관련 뉴스는 언제나 인명사고나 붕괴와 같은 안 좋은 소식들만을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광산의 모습은 이렇듯 위험하고 때로는 지저분하며 어딘가 우리와는 다른 세계인 것만 같다.

우리나라의 광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특히 1차 산업 중에서도 그 비중이 작다 보니 이러한 이질감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광업은 인류의 서사를 함께 걸어가며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던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다.

광업은 인류 역사 발전에 많은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약 200만년 전 초기 광업의 형태는 수렵과 채집에 적당한 흑요석과 같은 돌을 찾는 것부터 시작됐다. 약 6000년 전 구리를 발견하고 광석에 불을 사용해 제련하는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금속을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인류의 생산성 또한 급속도로 증가하게 됐다. 바로 청동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수메르인들이 금과 은을 제련하는 기술을 통해 가치 전달 수단인 화폐를 제작하게 되면서 무역이 활발해졌고 철을 제련해 더 단단한 날붙이 도구와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광업을 시작으로 비로소 인류는 국가 체계의 구축과 문명의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15-16세기 유럽에서는 식민지 확장을 위해 구리, 주석, 납, 철, 은, 금의 수요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광산 개발의 열풍이 불었고 자연스레 광산 기술의 진일보도 이뤄졌다. 특히 일부 기술자들의 전유물로 알음알음 구전돼 오던 광업기술들은 이 시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전과 더불어 표준화되고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16세기 아그리콜라에 의해 라틴어로 작성이 된 'De re metallica'(금속에 대하여)라는 광업의 바이블 같은 존재인 책이 있다. 채광, 선광, 제련 기술들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해 광산의 공학 기술적인 부분을 빠르게 널리 전파할 수 있었다. 또한 지역마다 제멋대로 붙여진 광물의 이름을 라틴어에 기초해 새롭게 정의하는 방법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환경과 노동환경, 안전에 대한 중요성도 언급했다. 출간 후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광업기술에 대한 표준화를 통해 선진 광업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인류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광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전쟁물자의 생산을 위한 원료 광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광산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시도했다. 이 시기, 노천광산에서의 광산·선광 장비의 대형화, 지하광산에서의 컨베이어벨트와 자동화 점보드릴 사용, 다이아몬드 비트에서 텅스텐 카바이드 비트가 달린 드릴로의 전환, 장비의 기계화 등이 이뤄지며 생산성 향상을 견인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전후의 계속된 산업화는 물론 지금까지 전 세계가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광업은 다시 한번 인류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줄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탄소중립, 이 거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광물들이 요구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기존에 주목받아왔던 광물이 아닌 희소금속이 새로운 주연으로 떠올랐다. 인류가 선택한 이런 전환점의 성공 여부는 어쩌면 인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광업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세기가 석유 패권의 세상이었다면 이제 다가오는 내일은 광물 패권의 시대, 제2의 청동기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박준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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