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현대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한 과거와의 연결이라는 허구를 전제로 작성됐습니다.
 

정영욱 한국원자력연구원 초고속방사선연구실 책임연구원
정영욱 한국원자력연구원 초고속방사선연구실 책임연구원

오랜 기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거뒀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보면 무척 놀라겠지만, 30년 후의 '당신'인 '나'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데 비로소 성공했습니다. 아마 당신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겠지만 그 복잡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30년 동안 진절머리 나게 집중할 일이니까요. 이 놀라운 성공의 첫 번째 활용으로 당신에게 이메일을 전한다는 게 나로서도 의외입니다.

지금의 내가 수많은 '나' 중에서 굳이 30년 전의 '당신'을 선택한 것은 시작하는 순간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을 좋아했고, 궁금증을 가장 잘 해결하는 학문으로 물리학을 막연히 동경했지요. 그러다가 처음 세상을 접하게 된 대학에서는 길을 잃었지요. 선택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친구들과 휩쓸려서 가게 된 대학원에서 일생의 길을 찾았습니다. 일천한 관념의 틀 속에서 전혀 정리되지 않고 헷갈리던 사실들이, 실험에서는 명확해지는 경이로움을 맛보고 '우리'는 과학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나는 대학원 시절에 '우리'가 고민했던 문제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예측과 다른 실험 결과에 당황했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포기하지 않고 그 원인을 계속 파헤치게 되었지요. 주위에서는 별거 아니니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조언했지만 '우리'는 하찮음이라도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예측하지 못했던 실험 결과에 대해 조금씩 설명을 하게 됐고, 결국은 인생의 첫 논문으로 이어졌지요. 지금 보면 그리 복잡한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엔 '우리'가 처음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이 무척 컸지요. 그래서 누군가가 '네가 옳다'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남이 알았던 것들을 이해하는 과정만 겪다가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주장해야 하는 그 첫 관문을, 힘들었지만 무사히 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오늘 전하고 싶은 내용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이후의 '나'는 조금씩 계속 변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아는 즐거움에 만족하던 '나'는 '나를 더 알아주기를 욕망하는 나'로 변해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마흔이 되는 순간은 끔찍이도 싫었습니다. 역사 속의 과학자들, 그리고 동시대를 사는 훌륭한 과학자들은 이미 젊은 나이에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이후 연구는 나에게 전투와도 같았습니다. 연구비를 더 가져오기 위해 주변 과학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했고, 연구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앞서기 위해 밤잠을 설쳤지요.

지금의 우리나라는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과학자의 수준, 연구비의 규모나 저변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이제는 결코 뒤처지지 않아요. 하지만, 과학을 대하는 태도와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누군가를 맹추격하던 '우리'의 그때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요.

'우리'가 선택한 길이 전쟁터가 된 것은 오롯이 '나'의 잘못만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이 편지를 받고도 당신은 똑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는 순식간에 나를 떠나지만, 과정은 항상 '우리' 삶을 지키며 채웁니다. 앞으로 다가올 선택의 순간에 과학자로서 처음 걸음마를 걸을 때의 '우리' 열정을 부디 기억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서 당부드립니다. 만약 '우리' 삶을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아닌, 진실을 추구하는 열정과 희열의 세상으로 지키고 싶다면, 당신은 충분히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정영욱 한국원자력연구원 초고속방사선연구실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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