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김현식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김현식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천안 출신 당대 석학 도올 김용옥 선생이 광주강연 서두에 판소리 단가로 '호남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필자는 만감이 교차한 적이 있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고향을 보랴하고 제주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흥양에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있고, 고산의 아침안개 영암에 둘러 있다"…중략 호남 50여개 지명을 중의적으로 표현, 고향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일체감을 심어주는 이 소리가 레코드 100만 장 판매를 기록하며 호남인들에게 애창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는 부러움과 함께 왜 '충청가'는 없는 것인지 탄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영남에서는 일찍부터 TK출신 정권이 퇴계 이황과 그의 유학을 '한국정신문화의 상징과 뿌리'로 만들고자 막대한 예산을 투입, 인프라와 콘텐츠를 확보 관광자원화함으로써 오늘날 한국 전통인문학의 대표성과 선비문화의 본향임을 주장하며,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모름지기 인문학과 예술은 나라와 지역의 정체성과 품격의 수준으로 자긍심과 일체감을 조성, 공동체 발전의 견인차가 되는 문화적 토대이다. 그러기에 영호남은 지금까지 나름의 독자적 문화예술생태계를 유지하며 '인문학과 예술의 본향'으로 브랜드화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것은 공단 하나 더 세우고 도로 하나 더 까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이며,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다. 오늘날 한류와 코리아의 관계가 웅변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럼, 충청은 본래 인문학과 예술의 변방이어서 존재감이 없는가?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 반대다. 한류의 시원은 백제이고 기호유학은 영남유학보다 먼저 형성, 관념에 치우치지 않고 훨씬 더 개방, 실용, 개혁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보령 출신 토정 이지함 선생은 아담스미스보다 200년 앞서 상공업부국론을 주장, 가히 실학의 뿌리라 이를 만 했다. 애민정신이 투철했던 그는 양반임에도 가장 천시되었던 장사꾼이 되어 재물을 모아 가난한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그의 토정비결은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자 괘의 해석을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한다.

또, 충남은 동학과 서학이 동시발흥 동시순교한 유일한 땅이다. 조선후기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새 세상의 꿈을 주었던 위대한 정신문화유산이다. 조선천재들의 도량이었던 계룡산 자락 연산땅에서는 김일부 선생이 정역철학을 완성, 소위 개벽사상이 태동하였다, 이에 바탕하여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했다. 현대에는 탄허 스님이 유성 자광사에서 후학들에게 개벽철학을 가르쳤고, 충남대 이정호 총장이 그 뒤를 이었다.

조선 가무악과 민속예술의 뿌리와 줄기도 충청이었다. 호남 판소리의 뿌리는 충청중고제로서 충남지역이 가장 많은 명창을 배출하였다. 한국 근대춤의 아버지는 홍성 한성준 선생이고, 국내 최초 민간극장은 공주 갑부 김갑순이 만들었다. 공주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한양에 오르지 못했다던 예술의 본향이 충남인 것이다. 계룡산과 금강은 한마디로 한국 인문정신과 예술의 뿌리가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현대정치의 중심에 서지 못해 변방화 되면서 고유의 정체성과 가치를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충청지도자들은 새로운 안목과 포부를 가지고 충청문화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시대적 의미 그리고 정치적 효용성을 제대로 간파, 중흥을 도모해야 할 때다. 지금, 문·사·철 기반의 고급문화 한류 창조와 국가균형발전, 국민통합을 위한 메가시티 건설이 급물살을 타면서 충청이 코리아의 새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본래 통합은 '중심을 바로잡는 일'이며 '뿌리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회귀가 아니라 역사문화예술의 재발견, 재평가, 재창조를 하는 '르네상스'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염원하는 '충청가'는 또 다른 지역주의가 아니라 통합을 선도하는 '신대한가'로 만들어져야 한다. 어느 지도자가 있어 문화르네상스로 충청을 바로 세우고 국가를 통합, 새 역사를 만들어 낼 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오늘이다.

김현식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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