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장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장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이 삶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면 암 치료는 어떨까? 시작은 모른다 치더라도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언제까지 병원에 다녀야 하는 걸까? 수술로 끝인 줄 알았는데 계속 병원에 다니라는 주치의의 말이 너무 야속하다. 나는 평생 암환자인 것인가?

암환자를 진료하면서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치료 과정을 바라보는 환자와 의사의 입장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이다. 암 수술 후 환자는 성공적인 수술로 치료가 다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간혹 병기에 따라서 추가적인 항암치료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 실망하는 환자의 모습에 주치의로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환자로서는 치료 그 자체보다는 쉽게 끝날 것 않은 암 치료의 과정이 더 부담스러운 것 같다. 그렇다면 치료라는 과정은 언제 끝이 나는 것일까? 의사는 언제까지나 암환자를 병원에 붙들어 두게 할 것인가? 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무엇이 또 남아 있는 것일까?

암 치료를 바라보는 의사와 환자의 이해의 차이를 좁히려면 위해 먼저 암이라는 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암은 급성병이 아니다. 폐렴같은 감염병이나 급성 충수염 혹은 외상으로 인한 손상처럼 원인이 분명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으로 치료가 끝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암을 제거하는 치료인 수술 혹은 항암요법이나 방사선 치료 등이 암 치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암이 발견되면 최대한 빨리 이러한 치료를 시도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적인 초기 치료 이후에도 암환자의 진료는 끝이 나지 않는다. 이후에는 재발이나 전이를 관리해야 한다. 언제까지인지는 잘 모른다. 암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재발률이 명확하게 떨어지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고, 그 이상 아니 평생 재발 혹은 전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다. 환자나 보호자는 암을 제거하는 초기의 치료에 주로 집중하는 반면에 의료진은 이러한 치료 이후의 과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수술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대부분의 고형암은 수술이라는 과정을 통해 암의 특성을 최대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추정적으로 짐작하던 암의 진행 정도가 확정된다. 이렇게 확인된 최종 병기로 이후의 치료 과정과 예후가 결정된다. 수술 이외에 추가적인 항암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성공적인 암 치료는 오랜 시간 동안 재발이나 전이가 없이 생존하는 것이다. 재발이나 전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수술 후 상태다. 그래서 이 시점은 또 다른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암을 제거하는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관리해야 하는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수술한 지 3년이 조금 지난 환자가 진료실을 찾아온다.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으니 "똑같지요 뭐,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어요"라며 대답한다. 이것이 필자가 듣고 싶은 가장 좋은 말이다. 검사 소견을 함께 보며 말한다. "지난번 사진하고 달라진 게 없습니다. 좋습니다. 잘 지내시고 6개월 후에 다시 뵙지요." 암환자의 진료실에서는 좋은 일이 있어도 좋지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지난 검사 소견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은 최소한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기지 않았다는 말을 의미한다.

반복되고 차이 없는 일상이 지겨울지 몰라도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는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환자들이 암이라는 것에 휘둘리며 근심 걱정만 하고 산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암을 인정하고 더불어 산다. 충수염은 수술로 제거하면 더 이상 충수염 환자가 아니지만 암환자는 수술 후에도 암환자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평생을 암환자로 사는 사람의 지혜다. 평범하고 지속적인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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