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

우리는 세계 최빈국에서 1996년 선진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입성했고 2009년에는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최초로 대한민국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됐다. 대한민국의 성장은 자생적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한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대덕연구단지를 만들어 기업의 기술개발과 전문인력을 지원하고 산업의 연구개발 투자와 대학의 인력 양성 역량을 확대해 민간 주도의 국가혁신체계를 구축한 자생적 혁신모델이었다. 민간 포함 국가연구개발비는 100조 원을 넘기며 GDP 대비 세계 최고가 되었고 정부 연구개발투자비도 30조원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출산을 적게 하고,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가 됐다. 2021년 8월 감사원은 대한민국 인구가 2117년 1천 5백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는 충격적인 '인구 구조 변화 대응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구 급감의 원인은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이었다. 2020년 수도권 인구와 지역 내 총생산은 전국 대비 5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도는 선진국의 두 배를 넘나들며 세계 최고다. 감사원은 과도하게 비정상적인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선진국 시대를 열고 개도국의 모델이 된 우리의 성장모델이 인구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제는 대기업과 수도권 중심 혁신성장 모델 자체를 바꿔야 한다. 기술혁신 자체도 단일기술혁신, 추격형 혁신, 산업별 혁신, 대기업 및 수도권 집중 혁신에서 융합기술혁신, 선도형 혁신, 데이터 인공지능 기반 산업전환 혁신, 융합형 벤처 스타트업 혁신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은 지역의 현장성과 산학연관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협업할 때 가속화된다. 실제 미국은 지역별 첨단기술 허브 구축에 1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2021년 시작한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을 위한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이 협력하는 경제전략으로 8대 신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은 2021년 산업 5.0과 2022년 유럽연합 임무형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간 연합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나름의 국가균형발전계획,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 지역별 전략산업 중심 혁신클러스터 육성 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600조가 넘는 대한민국 연간 예산 중 균형발전에 투자하는 균특회계는 1.8% 수준인 10조원 남짓이고 이것도 지역 자율이 아닌 중앙의 탑다운 지정 투자가 75%다. 국가연구개발 투자가 30조 원 수준인데 지역과학기술혁신에 투자하는 것은 1조원 수준이다. 중앙정부의 지방비 매칭 국비 사업이 6조를 넘고 있지만 지역혁신과의 연결성이 떨어지고 있다. 지역은 국비 사업 수주에 매달리면서 자체 과학기술혁신 투자 중 평균 56.6%가 국비 사업 매칭에 투입되고 있어 투자 조정이 쉽지 않다.

우선 국가의 균특회계 예산을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하고 지역 자율 예산 비중을 7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국가 연구개발투자 예산 중 지역의 과학기술혁신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이를 R&D 포괄보조금 혹은 지역이 기획하고 관리하는 묶음예산 지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방비 매칭 국비 사업을 대폭 줄이고 광역 지자체 간 협력 사업, 지역 자율적인 과학기술혁신 사업 지원, 지역 산학연 자율 협력 사업, 연구개발특구 및 산업단지 연계 지역 주도 혁신 사업 등의 예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의 자체적인 기획 조정, 성과관리 역량과 혁신지원 기관 간 협력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지자체들도 자체 예산에서 과학기술혁신 투자를 현재의 평균 0.44% 수준에서 1% 수준 이상으로 늘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국가 지원 대기업 주도 기술혁신으로 성장해온 모델을 넘어 지자체 지원 지역산업 주도 기술혁신모델로 만들어 지역 중심 국가혁신체계로 대한민국의 혁신체계를 전환하는 선도적인 노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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