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범 건양대병원 내과 교수
정인범 건양대병원 내과 교수

의료전달체계란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적절한 인력과 시설을 갖춘 보건의료기관을 통해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에서는 모든 질환자가 큰 불편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수술이나 항암 주사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감기약을 받으러 몇 시간을 기다려도 안 된다. 통증이 심하거나 안정이 필요하면 일정 기간 입원할 수 있어야 하고, 응급한 환자는 치료가 지체되거나 거부당해서는 안 된다. 반면 의료 자원의 낭비도 없어야 한다. 고가의 의료장비가 동네 의원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으면 안 된다. 위험도 큰 치료를 작은 병원에서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반대로 가벼운 질환이나 간단한 수술은 대학병원에서 할 필요가 없다. 환자의 증상과 진단에 적합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큰 어려움 없이 받아야 하되,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으로 의료전달체계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의료전달체계의 발전은 의료 자원의 적절한 배분에서 시작한다.

멀리 사는 죽마고우가 늦은 밤에 전화를 해왔다. 이 친구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작은 종양을 발견했고, 오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수술을 받고 회복실로 나왔는데 마취가 덜 깼는지 아직 정신이 몽롱하고 수술 부위는 욱신거리는데,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 했다고 한다. 수술 전에 입원이 필요 없는 수술이라고 들어서 좋아했었는데, 막상 수술을 받고 나서 몸은 힘들어 죽겠는데 집으로 가라고 하니 병원에서 내쫓긴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수술 부위는 아프고 돌봐주는 이도 없어서 무섭고 서럽다며 전화를 해왔다. 불필요한 입원은 안 해야겠지만, 이 친구 같은 경우는 짧게 하루라도 입원해서 진통제도 맞고 안정을 취하는 게 훨씬 환자에게 이로울 것이다. 그 병원이야 다른 위중한 질환자를 위한 병실도 넉넉하지 않으니, 간단한 수술을 받은 이 친구에게 침대를 내줄 리 만무하다. 이 친구는 그제야 '괜히 큰 병원에 왔다'라고 푸념했다. 이 친구의 경우처럼 아직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개선해야 할 점이 아주 많다.

현재 의료전달 체계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으로 의료 자원의 적정 배분을 꼽는다. 가벼운 질환을 보는 의원, 중등증 질환을 치료하는 병원,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상급병원이 각각의 역할에 합당한 질병군을 치료하도록 적절하게 지정하는 것이다. 우리 대전지역도 당연히 개선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아니 1순위 개선대상이다. 대전은 의원과 병원의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부족하거나 편중되지 않는다. 우리 지역의 적정배분 문제는 상급병원의 지정에서 기인한다. 상급병원 지정이 부족해 효율적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상급병원 지정이 적은 지역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손해가 돌아간다. 대학병원엔 경증환자들이 몰리게 돼 응급질환과 중증 환자들이 진료가 늦어지고, 대학병원과 병·의원 간의 역할이 중첩돼 비효율적인 자원 활용과 전문성 낭비를 초래한다.

대전지역 대학병원으로 유입되는 환자는 주로 대전시민들과 대전 서남부권(논산, 계룡, 부여 등)의 환자들이 많다. 전라북도 무주와 충청북도 옥천, 경북 김천에서도 대전의 대학병원을 많이 찾는다. 대전시 인구가 150만 명이고, 주변 지역 인구까지 더하면 200만 명이 넘는데, 정부는 대전에 상급종합병원을 딱 한 개 지정했다. 광역시 중에서 상급병원이 하나뿐인 곳은 대전밖에 없다. 대구에는 5개 병원이, 인천에는 3개, 대전보다 인구가 적은 광주에도 2개가 있다. 대전은 전주와 청주, 강릉과 똑같이 1개만 지정돼 있다. 충남에 2개가 있으니 공평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대전시민이 진료를 받으려 굳이 충남을 방문하지는 않기 때문에 어불성설이다. 상급종합병원의 분포 지도를 보면 이러한 차별이 한 눈에 보인다. 대전과 대전 서남권은 하나의 의료 생활권이다. 서북권과는 별도의 권역으로 생각해 상급병원을 추가 지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도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하고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지역 사정은 지역민이 더 잘 아는 만큼 지역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우리 지역의 의료전달 체계개선을 위해 관심 가져주고 힘써주기를 감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정인범 건양대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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