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이세진 옮김)=수학자이자 기자, 언어학 박사인 프랑스 출신 작가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 2020년 공쿠르상 수상 후 프랑스에서만 110만 부 이상 판매된 화제작이다. 이 책은 파리-뉴욕 간 여객기가 석 달이란 시차를 두고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사람들을 태우고 동일 지점에서 난기류를 겪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그린다. 주인공은 지난해 3월 파리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는 여객기가 난기류를 만나 위기를 겪은 뒤 무사히 착륙한다. 그리고 3개월 후 같은 기장과 승무원, 승객을 싣고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 청부살인업자, 소설가, 동성애자 음악가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가운데, 3월 승객과 6월 승객이 자신의 '분신'과 대면하면서 자기 삶의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제목 '아노말리'는 '이상' '변칙'이라는 뜻이다. 민음사·480쪽·1만 8000원
 

△법관의 일(송민경 지음)=법관이란 직업을 상상할 때, 흔히 법복과 법모, 법봉으로 대표되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정에서 법봉은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1966년 이후 쓰이지 않고 있다. 판사들의 책상에는 법봉 대신 무지막지한 서류 더미와 이를 손쉽게 넘기기 위한 사무용 골무가 놓여 있을 뿐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근무하던 저자가 퇴임하며 펴낸 이 책은 무거운 직분과 평범한 일상 사이를 오가는 '직업인으로서의 법관'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법을 이해하는 일이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법관이 하는 일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판사의 관점, 즉 법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잠시나마 동참해보라고 권한다. 문학동네·308쪽·1만 6500원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보경 지음)=몇 해 전 어느 겨울, 길고양이 한 마리(냥이)가 산중암자에 불쑥 나타났다. 그 날 이후 고양이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저자는 사람과 닮은 듯 다른 고양이의 생활을 지켜보며 존재와 삶을 생각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글로 적어 왔다. 이 책에선 '바라보기'와 '기다리기'. '느리게, 느긋하게'를 이야기했던 전작들에 이어 매 순간을 기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을 성찰했다. 단풍이 무르익듯 깊어진 스님과 고양이들의 나날을 담은 이 책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인연의 오감,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인적 드문 산중암자에서 '냥이선사'로부터 터득한 농밀한 삶의 지혜다. 불광출판사·320쪽·1만 8000원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김은혜 지음)=한방병원 임상교수인 저자가 억울하고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말기 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4차 병원'은 없는 단어지만 한방 암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를 보는 한의사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부른다. 대부분의 환자는 1-3차 병원을 다 돌고 나서도 호전되지 않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의사를 찾는다. 저자는 특정 시선에서 해석되지 않은 온전한 환자들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한의사의 전문성과 권위를 바탕으로 환자의 상황을 설명하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느껴지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내가 대신 전하게 된 이야기지만 생의 마지막에서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 있었음을 누군가 기억해주길, 남은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평안해지길 기도한다"고 말한다. 글ego prime·232쪽·1만 3800원.
 

△생일 없는 아이들(김희진 등 지음)=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아이, 이름이나 옛 전화번호는 남겨져 있지만 더는 그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아이, 부모가 구금시설에 있는 아이 등 여러 이유로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환기한 책이다. 저자들은 출생등록이 될 권리를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변화를 만들고자 힘을 모았다고 말한다. 또 출생 미등록 사례들이 뉴스에서 일회적이고 예외적인 기삿거리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아동의 삶에는 큰 충격이 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호소한다. 틈새의시간·220쪽·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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