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공군사관학교 출신이시군요?"

"아닙니다. 저는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럼 항공대 출신이시군요?"

"아닙니다. 저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항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중에 조종사가 됐다고 하면 사람들은 의외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사실을 말하면, 나도 공군사관학교나 항공대학교를 나와야 조종사가 되는 줄 알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조종사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내가 조종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항공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한 199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88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 항공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조종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군에서 전역한 조종사만으로 항공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항공사는 자체 조종사 양성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비전공자도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내 동기 중에는 항공운항을 전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경영학, 축산학, 영문학, 지구과학 그리고 항공기계 등등 전공도 다양했다. 대부분은 비행훈련을 한 시간도 받지 않았고, 항공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전공자를 훈련시켜서 조종사를 만들겠다는 항공사의 결정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다.

한때 비전공자가 조종훈련생으로 항공사에 취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항공사 조종사로 취업하려면 최소한 사업용 조종사 면허가 있어야 한다. 조종 면허는 대학에서 항공운항을 전공하거나 울진비행학교 또는 해외 비행학교에서 조종훈련을 받아 취득할 수 있고, 공군 사관생도나 공군 조종사 후보생 자격으로 조종훈련을 받아 취득할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조종면허가 항공사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종사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조종면허가 있으면 취업에 유리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사업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더라도 항공사에서 요구하는 경력을 쌓으려면 개인적으로 비행시간을 늘리거나 비행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해야 한다.

민간교육기관에서 훈련을 받으면 조종사가 될 확률은 높지만, 항공사 취업까지 몇 년을 기다릴지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항공사 지원자격을 만족한다고 해도 취업은 쉽지 않다. 군에서 전역하는 조종사, 국내 대학과 비행학교 졸업자 그리고 해외에서 조종면허를 취득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일 년에 몇 명이 조종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이미 수천 명이 조종면허를 갖고도 항공사에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COVID-19로 인해 국내 항공산업이 침체되면서 취업하지 못한 조종사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항공사에 취업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예측할 수 없다.

항공사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은 꼼꼼하게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공군 조종사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공군조종사 후보생으로 선발되면 경제적인 부담 없이 훈련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국가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고, 전역 후에는 민간항공으로 이직도 수월하다. 다만, 공군조종사는 신체조건이나 적성검사가 까다롭고 훈련은 매우 엄격하다. 또, 공군조종사 후보생으로 선발되더라도 모두가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훈련을 마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공군 조종사 프로그램은 여전히 시도할 가치가 충분하다.

해외 항공사에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조종훈련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훈련비용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대부분의 훈련생은 성공적으로 훈련을 마치고 항공사에 취업한다. 영어에 자신이 있다면, 해외 항공사의 조종훈련생 프로그램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로 돌아오려고 계획한다면,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각각의 방법에는 장단점이 있다. 조종사가 되려고 한다면, 신체조건, 언어능력이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결정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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