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연 목원대 사범대학 교직과 교수
임재연 목원대 사범대학 교직과 교수

학생 간 폭력이나 따돌림 같은 갈등 사안이 발생하면 학교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가해학생에게 선도 조치를 내리고 사안을 종결했었다. 그러나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 위주의 사안처리 방식은 학교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해당 학생들의 심리적 상처와 관계적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최근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했다.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의 경우 교육지원청의 심의위원회를 통해 가해학생에게 선도 조치가 내려지고, 그 외의 사안들은 학교가 학생 화해프로그램 등을 진행함으로써 학교장 자체해결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번 법률 개정 전에도 화해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학교가 있었다. 교사가 관련학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성급한 화해 요구로 화해는커녕 갈등을 더 심화시키기도 했었다. 이에 화해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화해프로그램이 피해학생에게 두 번 피해주는 것 아닐까? 효과가 있을까? 가해학생은 징계를 면하려고 피해학생과 화해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등의 우려다. 그러나 학생 화해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된 이상 학생 간의 화해는 이제 공식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진행돼야한다.

학생들에게 화해란 어떤 의미일까? 화해프로그램의 효과가 있을까? 학생들의 화해를 끌어내는데 필요한 요건들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화해한다는 것은 관계가 새롭게 변화·정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관계, 갈등 관계가 아니라, 건드리지 않고 함께 있어도 신경 쓰이지 않는 새로운 1대 1의 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관계 변화의 시작이다.

또한 화해프로그램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대화하는 장이다. 교사와 학부모가 처리하는 대로 따라야 했던 학생들이 갈등 해결의 주체가 돼 배워가는 교육과정이자 인간적 성장의 기회이다. 사과·용서와 같은 결과보다 타인의 말을 듣고 내 말을 표현하며 대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다.

학생들의 화해를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몇 가지 선행 요건이 있다.

△교사의 화해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교사는 학생들의 화해를 진행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학생들의 관계와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프로그램에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과 학부모가 화해프로그램 진행에 동의해야 한다. △학생들이 함께 만나기 전에 진행자가 각 학생과 개별적인 상담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보고, 진행자도 사례의 쟁점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욕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프로그램 관련 시간, 장소, 배석자 등을 학교가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고, 학생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자발적 선택권이 화해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의 주체로 참여하게 만든다.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 확보와 말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안전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안전한 분위기는 진행자가 학생들을 존중하고 학생들이 진행자를 신뢰할 때 만들어진다. △각자 힘들었던 감정이 해소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면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공간과 사안에 대해 책임지려는 힘도 생길 수 있다.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 행동을 하게 된 의도를 알게 되면 화해가 이뤄지기 쉽다. 이를 위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도록 해야 한다. 왜 그랬는지 의도를 알게 되면 누그러지는 게 분명히 있다.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것도 화해를 위해 중요하다. 지금까지 상대방의 문제로만 보아왔던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자각하고 이해하게 되면 자신이 기여한 부분도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은 화해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상대의 몰랐던 점도 알게 되면서 상호 존중하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며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게 된다. 화해프로그램을 학교 외부 전문가에게 의존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교 내부의 안정적인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