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교수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교수
위드 코로나 시행을 앞두고 국내 여행업계가 들썩인다. 유럽 여행의 대명사 파리.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생각해 본다. 몇 년 전인가. 중학생 딸아이를 데리고 멋진 아빠 역할을 해보리라 다짐한 파리여행이었다. 노틀담 대성당 첨탑에 올라 고딕양식이 어쩌고 저쩌고 한국에서 못했던 체험학습의 뿌리를 뽑아 보려는 아빠가 딸아이는 마뜩잖다. 딸아이 손을 이끌며 루브르를 거쳐 종착지인 개선문을 향해 가던 샹젤리제 거리에서 말로만 듣던 파리의 소매치기를 내가 당할 줄이야. 반갑고 감동스러워야 할 개선문이 상실감 가득한 문이 되어버린 웃고픈 추억이 있다. 샹젤리제는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에 이르는 2㎞ 거리다. 프랑스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공간이며 수많은 파리지앵과 파리지엔느의 멋에 세계인이 맘 설렌 곳이다. 이 거리가 언제부터인가 소비의 끝판왕인 명품 가게들로 가득차고 왕복 8차선의 차량들로, 날아오는 비둘기들로, 수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게 된다. 시민들이 떠난 거리를 시민이 찾아오는 거리로 만들고자 파리 시장과 시민이 뭉쳤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샹젤리제를 생태정원으로 바꿔나가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차도 대신 나무와 녹지대가 숨 쉬게 하는 샹젤리제의 변화를 전세계 전문가들은 눈여겨보고 있다.

우리는 전면철거와 재개발로 상징되는 개발시대를 지나 인간, 도시, 그리고 환경이 공존하는 지속가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건축의 오랜 고민이던 자연과의 조화는 생물을 뜻하는 바이오(Bio)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를 제안한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조어인 `바이오 필리아`로 대변된다. 그는 인간 본능 속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자연친화 사상은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산과 공원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화분을 천장에 매달거나 벽에 붙여 자연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것이 바로 바이오 필리아의 연장선상인 것이다. 아마존은 바이오 필리아를 오피스 건축물로 확장했다. 시애틀에 건축한 `더 스피어스(The Spheres)`는 높이 30m 지름 40m 세 개의 연결된 유리돔으로 지오데식 돔(같은 길이의 직선 부재로 구면을 분할한 돔)의 오각형 모듈로 구성되어 퍼즐처럼 맞춰진다. 돔의 내부는 자동 온습도는 사람을 위한 낮 시간과 식물을 위한 밤 시간이 달리 조절된다. 4만 점의 식물이 내부에 자생하고 나무를 사용한 내부 인테리어는 마치 회사명에 어울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연상케 한다. 아마존은 바이오 필리아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아마존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신사옥을 추진 중이다. 자연의 패턴 중의 하나이며 우리에겐 DNA 구조로 익숙한 `이중나선` 형태를 지닌 건축물은 바이오필릭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도시와 자연 또는 도시와 생태라는 단어의 조합은 동시에 이루기 힘들 거라는 편견을 깨트려버린 싱가포르를 한번 보자. 쌍용건설이 시공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로 유명한 나라다. 서울보다 조금 넓은 면적에 인구밀도 세계 2위로 국토의 48%가 녹지로 이루어져 있는 나라다. `정원 속 도시(City in a Garden)`를 국가 도시계획의 목표로 삼아 공항, 호텔, 도심, 교량 등을 자연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바이오필릭 시티를 완성해 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가든 바이 더 베이(Garden by the Bay)는 12개의 슈퍼트리로 구성되어 나무 모양의 조형물이 진짜 나무와 같은 역할을 한다. 폐목재를 태워 냉각에너지를 만들고, 태양에너지를 모아 돔의 오염된 공기를 배출하고 각 트리에 구축된 태양전지는 환경파괴 없이 지속가능한 정원을 가능케 한다. 창이공항의 실내폭포는 빗물을 재활용해 40m 높이에 1분에 3만 8000ℓ 물이 쏟아져 내리게 해 실내 온도를 낮추고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분명 건축은 자연과의 공생이며 자연과의 공생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의미하는 것일 게다. 자연과 함께 하자,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건축과 도시가 그리고 나라가 지속하며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 선택이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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