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오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으로 가족끼리 변변한 식사 한번 못했다. 코로나 이후 가족 중 장기입원 환자도 생겼으나 병문안도 공식적으로 힘들어졌고 홀로 계신 아버님과의 만남도 뜸 해졌다. 심지어는 가족 제사와 명절 제사도 간소화했고 필수인원만 참석하고 거의 모이지 않았다.

물론 집안의 어른이신 아버님의 강력한 방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코로나 조치였지만 우리 집안의 경우 일반 가정보다 더 예민하고 기민한 대처였고 잠시도 느슨함을 허용치 않은 집안 분위기도 거든 결과였다.

처음엔 이런 상황들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으나 이제는 당연한 듯 모든 만남은 간소화 최소화 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런 변화가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친지들마저 일년에 한번 얼굴 보는 일이 드문 세상이 되었다. 이런 풍경이 더 지속 된다면 이런 상황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듯하다.

언론이나 방송국도 여느 때와는 다르게 오월의 기념일을 조용히 조심조심 넘기고 있는 분위기지만 그래도 각종 메스컴이나 sns에서는 부모사랑 자식사랑을 홍보하기 여념 없고 분위기는 오월 내내 훈훈하다.

가정의 달 오월의 기념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입장마다 다른 의미와 차이가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어린이날을 앞둔 부모는 부모의 역할로, 어버이날을 앞둔 자식은 자식의 역할로, 스승의 날을 앞둔 제자와 학부모는 그 역할로 각자 일종의 부채의식이 발현된 기념일이 아닐까 드는 의문은 허약한 내 마음 안의 개인주의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젊은 청년층이나 중년층은 각종 온라인이나 sns로 소통하고 삶을 꾸려가지만 디지털 소외 계층은 이마저도 소통의 공간에서 배제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들은 모두 자식들이 달아 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지 않으면 거리를 다니지 않을 정도로 그것은 일종의 관례처럼 기념일을 보냈으며 도덕적 논리도 삶의 방향도 잘 먹고 잘살자 논리로 일정하게 의식이 흐르던 시절에 효도는 보편적이고 정형화되고 일방적인 시대적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고 커뮤니티가 다양화되면서 사람으로서 예(禮)의 기준이나 삶의 관계 방식이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세상은 기존에 있던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에 저항하고 반기를 들고 삶의 기준은 다각화되면서 일종의 효와 예의 기준도 많이 바뀌고 코로나19 현상과 온라인의 비약적 발전으로 효도를 하는 방법도 형태가 바뀌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기념일을 무색하게 하는 삶의 태도는 배려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면 구태여 이런 기념일은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트집 잡지 않을 것이다.

예(藝)를 중시하고 부모·자식의 관계를 삶의 근간으로 삼았던 공자는 핵심 사상 인(仁)을 실천할 수 있는 황금률 하나를"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마라"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면 타인이 원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타인도 원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이웃 지인에 대한 사랑은 결국 나를 사랑하듯 상대를 보는 마음이다. 회복되지 않는 비정상의 일상이 정상인 듯 받아들여지고 서서히 이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지만, 마음과 살을 부딪치며 미소를 머금던 사랑하는 이웃 친지들의 환한 미소는 여전히 그립고 아득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까이 앉아 대화하고 친한 사람끼리 어깨동무하고 음식을 나누며 보내던 날들은 인간이 누리던 마땅한 일들인데 이제는 이런 날들이 돌아온다면 거창하게 인간 해방이라도 된 듯 마음껏 축제를 벌이고 싶다. 이양희 갤러리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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