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점(易占)이 적중하는 이유를 중국의 사서삼경에서 대강 찾아보았으나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우연하게 나타난 점괘가 항상 적중하는 이유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고, 그 질문은 모든 예지인의 숙제다.

<주역>을 애독한 독일인이 많은데, 심층심리학으로 유명한 `칼 구스타프 융`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살면서 주역을 공부하고 돌아온 `헬무트 빌헤름`에게서 주역을 배워서, 그 역점을 정신병치료에 활용하였다. 그는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주역>으로 점쳐 그 병의 원인을 찾아낸 경우를 기록하기는 했으나, `점괘가 왜 적중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수년간 궁리한 끝에 나온 대답이 `인과(因果)의 동시성(同時性)`이라는 이론이다. 인과는 선인후과(先因後果)라고 알고 있던 당시에 그의 `동시성이론`은 외면당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숙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 우연과 필연의 관계는 비단 역점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고, 모든 점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예지학은 나타난 모습을 연구하는 천문(天文)·관상(觀相)·지리(地理)와 모습이 없는 이치를 연구하는 사주(四柱)·육임(六壬)·기문(奇門)·성명학(姓名學)등으로 대별된다. 그 중 육임과 기문은 점술에 속한다. 천문학은 국가의 운세를 살피고, 풍수지리는 한 집안의 길흉과 관련이 있다. 기타는 개인의 운명을 예측하는 내용들인데, 가장 친근한 관상학은 성형수술 때문에 믿을 수 없게 되면서, 요즘은 사주팔자가 대세가 되었다. 그런데 생년월일을 가지고 개인의 운명을 판단하는 데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사주는 전체 51만 4400종류가 있으니, 우리 인구를 이 숫자로 나누면 대략 100명 정도가 같은 사주를 타고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같은 사주인데도 인생은 다르다는 것이 사주명리학의 숙제다.

이와 관련하여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기와 사주가 같은 사람을 찾아 봤더니, 벌을 키우는 사나이였다고 하는 고사가 있다. 이성계가 자기는 8도를 다스리는 군왕인데 자네는 왜 그 모양이냐고 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나도 벌통 8개에 벌떼가 수백만이니, 8도의 인구 수 만큼 많은 내 수하가 있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즉 같은 사주팔자면 성향이 비슷하다는 말인데, 사주팔자는 꼭 같은데 실제로 인생은 왜 꼭 같지 않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성명학에서는 각자의 성명(姓名)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성명은 출생 후에 작명하고, 또한 개명(改名)이 자유로우니 불변하는 고유의 특징이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한편 출생지를 감안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란성쌍생아는 출생지가 같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들의 인생행로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그래서 개인의 인성이나 특징은 관상을 보아야 하고, 운수의 길흉은 사주학에서 전적으로 다룬다는 설명이 나온다. 정조시대 다산 정약용선생은 사주에서 사용하는 십간십이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오늘이 왜 갑자(甲子)일이냐? 을축(乙丑)이라는 하면 안 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한다. 언제, 누가, 무슨 이유로 육십갑자를 이렇게 배대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관상학과 풍수지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면서 미신(迷信)이라고 폄하했다. 그가 천주학에 몰입하면서 생긴 편견인지는 알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주역에 대해서는 <주역사전>(周易四箋)이라는 명저를 남겼으니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예지학도 전문분야가 있어서, 국가의 흥망은 천문에 잘 나타나고, 한 집안의 성쇠는 풍수지리에 달렸고, 개인의 특성은 관상이 정확하고, 개인의 운로는 사주에서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각각 전문분야가 있어서, 제대로 판단하려면 종합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니, 제대로 된 예지인이라면 박학다식해야 한다.

황정원(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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