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들은 건축물을 설계해 주고 설계비를 받아 사무실을 운영한다. 그런데 이 설계비라는 것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얼마를 받아야 적정한 것일까. 참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정량화해 기준 잡기도 어렵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민간 건물의 설계비는 정부나 건축사협회에서 권장하는 산출 방식들은 있지만 자율 시장경제에서 지켜지긴 쉽지 않다. 건축사들이 능력껏 받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젠가 설계비를 `종이 값` 이라고 표현하는 건축업자의 말을 듣고 허탈했던 적이 있다. 설계라는 행위를 종이 몇 장에 그림 그리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설계라는 행위는 생각보다 여러 과정을 거친다. 단독주택을 설계할경우를 가정해 보자. 먼저 땅의 여러 조건을 분석하고 건축주가 요구하는 기능을 조합해 기본구상과 스케치를 한다. 그 다음은 컴퓨터로 평면도와 내·외부 투시도, 또는 모형을 만들어 건축주에게 1차 브리핑을 한다. 이 과정이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정도 걸린다. 이런 과정은 보통 서너번 정도 이어지기 때문에 기 2-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여기까지가 기본계획이다. 다음은 인·허가를 위한 실시도면을 그리는 단계다. 보통 1-2개월이 걸린다. 그 뒤에는 관청에 인·허가 업무를 건축주를 대신해 진행한다. 허가가 나면 착공신고를 대행 한다. 건축공사가 진행되면 설계자로서 감리자와는 별도로(물론 감리를 설계자가 진행 할 경우는 감리비를 따로 받는다.) 일일이 재료를 선정해 주고 시공현장이 설계의도대로 잘 지어지는지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고 관여한다. 공사가 완료되면 허가도면을 기준으로 시공 중 바뀐 부분을 체크하고 준공도면을 작성해 준공서류를 관청에 접수한다. 준공이 처리되면 건물이 팔리거나 헐릴 때 까지 건축주가 여러 이유로 호출 할 때마다 달려가야 한다. 건축사 사무소는 업종상 서비스업에 속하는데, 이 때문에 `무한 서비스`로도 비유된다. 이상은 그나마 많이 간추린 내용이다. 이런 여러 과정을 거치는 건축설계업무에 대한 대가를 도면작의 장수나 평당으로 메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단독주택 한 채의 설계비는 몇 백 만원에서 억 단위 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 엄청난 금액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화가들의 그림 값에 비유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무명작가와 유명작가의 그림 값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건축 설계비를 종이 값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림을 호당 가격으로 환산하는 것만큼이나 무지한 것이다. 필자는 가끔 나는 평당 얼마짜리 건축사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건축가가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대략 요약해보면 "자기가 일한만큼 받는 사람은 프로고, 더 받으면 사기꾼, 덜 받으면 바보"라는 내용 이었다. 적당한 설계비를 논하기 전에 건축사들은 자신이 프로인지 사기꾼인지 아니면 바보인지 자문해 봐야 할 것 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변엔 필자를 포함해 바보 건축사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느 건축사나 프로가 되는 것이 목표일 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절대로 사기꾼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일 것이다.

조한묵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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