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국의 작은 중세도시 요크에서는 문화재 편의시설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이곳의 랜드마크인 클리포드 타워에 방문객센터를 건립하려는 정부 계획이 통과됐지만 주민들이 사업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나지막한 언덕에 서 있는 타워의 아래쪽에 지면 높이를 낮추고 타워와 비슷하게 원형형태로 지으려는 방문객센터가 문화재경관과 도시의 미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해야 할 말을 주민들이 하고 있는 것 같아 생소하다. 관광수입이 지역주민의 주요 경제적 소득원인 요크시로서는 방문객센터가 건립되면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도움이 될 것인데도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에게 돌아올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역사도시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문화재가 지닌 공적인 가치와 그 가치로 인해 다수가 받게 될 혜택을 자신들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화재행정을 규제행정이라고 부른다. 어느 국가에서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고, 개발 등의 경제활동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규제의 당위성, 규제여부의 판단기준, 국민의 수용정도 등에 있어서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민원내용에서 금방 알 수 있다. 국내의 민원은 주로 문화재로 인해 개인이 받는 규제가 부당하다는 점을 호소한다. 특히 주민의 삶의 현장인 고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영국에서는 규제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 그리고 현재 뿐 아니라 미래세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화재가 지닌 공적속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사회적 규제를 완화하게 되면 오히려 공공을 위한 혜택이 감소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전적으로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취지에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모든 개발행위에 대해 허용이나 규제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삶의 터전으로서 고도의 역동성을 고려할 때 보존과 육성을 병행하는 정책을 실현한다면 공익을 위한 국민의 자발적인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고도의 역사적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변화와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고, 그런 정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주민과 국민의 역할이다. 이수정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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