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가 혼란에 빠지면서 요즘 정치공학이란 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경영공학, 사회공학, 금융공학, 의료공학처럼 경제, 사회, 금융, 의료 등 여러 분야에 공학적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합리성, 효율성, 경제성, 실효성 등을 제고시키기 위한 새로운 학문 간의 융합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공학(political technology)이란 정치 분야의 정책, 제도, 사업, 선거에 이르기까지 공학적 방법을 활용, 정치의 합리성과 실효성을 제고해 권력통치행위와 조화시키는 현실적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지금은 정권쟁취를 위한 산술적 합종연횡이나 게리맨더링, 표 끌기 선심정책 등 꼼수정치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정치란 원래 권력놀음이 아니라, 양심과 진실을 기반으로 한 무형의 인본(humanism)가치와 현실적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유형의 합리적 가치를 최적 조율하여 통치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책관련 통계처리방법이나 미래 예측모사와 분석 등 정책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학적 기법이 활용되었지만, 소셜네트워크와 인공지능기술이 융합되면서 인본가치가 포함된 포괄적 정치공학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사회발전 조류에 합류하지 못하고 지역, 이념, 세대와 계층 간의 대립으로 그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무능, 부패, 무책임이 만든 시대적 돌연변이 정치가 표만 좇는 포퓰리즘, 각종 이익단체들의 조직적 세력화, 끊임없이 양산되는 규제 법률, GDP상승률보다 몇 배 이상 급속 증가하는 국가예산 팽창과 부채증가, 부실금융과 같은 많은 적폐들을 양산하고 있다.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 철학사`에서 "정치는 감성적 이념주의에서 이성적 합리주의로 발전한다"고 했다. 권력이 인본가치를 무너뜨린 고대 아테네의 신의 권력, 중세 종교권력, 근현대의 왕권과 일부공화정의 마키아벨리즘적 패권정치는 결국 과학발전으로 인한 합리주의 조류에 밀려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은 인공지능기술과 다양한 산업이 융합된 4차 산업혁명시대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진화된 인간은 역사적으로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능하지만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무능하며 산업과 융합된 인공지능기술이 사피엔스 종의 진화 한계를 이미 추월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래엔 공학적 효율과 합리성이 제고됨은 물론, 진실을 가리고 인간의 감성까지 인지하는 초인간시대를 예고한다. 연초에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는 지금까지 인간의 두뇌작용 메커니즘을 공학적으로 구현해낸 딥 러닝,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등을 포함한 인공지능기술로 `생각하는 갈대`가 아닌 `생각하는 시스템`을 출현시켰다. 사람대신 일하는 로봇은 물론이고 스스로 학습하고 심리인식을 통하여 지식인의 전문분야까지 더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의사보다 더 신뢰받는 인공지능의사 왓슨(Watson), 이세돌의 심리적 요인까지 학습하여 완벽하게 승리하는 알파고, 펀드매니저 대체 인공지능 컴퓨터,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면접을 하는 지능형 로봇, 독자들의 취향까지 배려하는 로봇 소설가에 이르기 까지 이는 마치 후고구려 군주 궁예가 쓰던 관심법이 연상될 만큼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인간이 인공지능기술을 다루는 세상은 공감과 개성 그리고 진실과 효율을 중시하는 합리주의가 온다고 예측하고 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기술과 정치의 융합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정치공학시대가 합리적 정책과 진실의 정치가 뿌리 내리는 새 정치창조를 예고하고 있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다. 지도자의 책임성과 포퓰리즘에 대한 경구로 해석된다. 요즘처럼 무책임과 불합리가 지배하는 타락된 한국정치에 궁예의 관심법을 쓰는 정치개혁 저승사자(?)가 나타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는 정치만 예외일수 없다는 것이 우리에겐 큰 희망이다. 제발 이것이 나만의 패러독스가 아니길 새해에 소망해본다.이원묵 한밭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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