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바로 현직 대통령 탄핵. 탄핵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주도했다.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고, 측근비리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이 이유였다. 당시 국가수반이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재적의원 271명 중 193명이 찬성해 의결됐다.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농성 등 저지 노력도 무소득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기각한 5월 14일까지 권한이 정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추진은 그가 겪은 수모 만큼 많은 파장을 몰고 왔다. 무리한 탄핵 추진에 대한 국민적 질타가 봇물을 이뤘다. 전국 각지에서 탄핵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잇따랐다. 각 시민단체들은 탄핵소추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반발했다. 변호사모임 등은 탄핵철회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며 `대오`를 맞췄다. 전국이 탄핵사태로 들끓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적 파장도 컸다.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 분노는, 같은 해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 `직격탄`을 날렸다. 노 전 대통령과 의리를 지켰던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했다. 반면 제 1당이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건지는 데 그치며 2당으로 밀려났다. 제 2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은 9석,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얻으며 각각 `존폐위기`에 처했다.

12년이 지난 2016년, 대한민국은 다시 탄핵으로 들끓고 있다. 이번 대통령 퇴진 요구의 원인 역시 측근비리 문제이다. 상황도 12년 전과 비슷하다. 전국 각지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서울 광화문을 메운 촛불 인파는 사상최대치를 경신했다. 시국선언도 이어진다.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국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다만 이번 대통령 퇴진 요구가 전과 다른 점은 분명히 있다. 정당이 아닌 국민이 대통령 퇴진 요구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12년 전 특정 정파의 이해(利害)가 탄핵 사유였다면, 지금은 주권자의 분노가 기저에 깔렸다는 얘기다.

12년만에 돌아온 탄핵정국. 지금 국민은 전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평화 집회로 수준 높은 시민의 표본이 됐다. 대통령 측근이 헌정을 유린한 `민주주의 후진국`의 국민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렇 듯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에게 너무 과분하다. 성희제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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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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