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오디세이] "민족 수난·역경 함께한 전국체전… 아산서 화합의 장으로"

황수연 당시 서울시 장학관이 서울올림픽에서 매스게임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  사진=학교체육진흥연구회 제공
황수연 당시 서울시 장학관이 서울올림픽에서 매스게임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 사진=학교체육진흥연구회 제공
◇"스포츠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위대한 창조적 힘을 발휘합니다. 역사와 충절의 고장이자 통합의 상징인 충남 아산에서 제 97회 전국체전이 열리는 건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큽니다." 황수연 학교체육진흥연구회 회장은 "97년에 걸친 체전은 이 나라 이 민족이 걸어온 형극의 길이었으며 수난과 역경을 함께 한 역정이었다"며 "우리는 그 길을 국민축제로 승화시키는 창조적 역량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무공 정신을 되살려 아산체전을 국민화합 체전으로 만들고, 체육 발전의 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리우올림픽의 실패는 초·중·고 꿈나무 발굴 육성을 위해 학교체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다"며 "대한민국의 스포츠 정책은 학교체육 활성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충청 출신으로 체육계에서 많은 활동을 해왔다. 먼저 근황이 궁금하다.

"한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왔다. 대전에서 체육교사를 했고, 1979년 문교부 선발 장학사 시험에 합격해 서울에 온 지 어느 덧 37년이 됐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식전행사를 총 지휘한 게 떠오른다. 얼마 전까지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으로 4년간 봉사했고 요즘 대한체육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학교체육진흥연구회를 위해 일하고 있다. 고향에도 자주 오간다."

-학교체육진흥연구회에 대해 들려 달라.

"2001년 6월 사단법인체로 설립해 제가 이사장 겸 회장으로 취임했다. 학교체육의 이론과 실제를 연구하며 학교체육의 체계적인 연구 활동을 학교현장과 접목시켜 학교체육을 진흥하자는 취지였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시·도지부를 두고 있고, 초·중·고 체육교사로 구성된 회원 1만8765명으로 조직돼 있다. 정기적으로 `학교체육`지를 1만 부씩 발행하고, 매년 12월에는 학교체육진흥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마침 아산에서 전국체전이 열리고 있다. 의의를 설명한다면.

"체전은 1920년 7월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이후 올해로 97회째다. 체전의 의의는 스포츠를 매개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위대한 창조적 힘을 발휘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인구 30만 명의 충절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통합 체육회 출범 뒤 첫 체전이 열리는 건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족, 염결무사 정신을 되살려 국민화합의 장으로 승화되길 고대한다."

-체전이 개최될 때마다 개선 방안이 거론된다. 지나친 승부 집착도 문제라는 지적인 데.

"물론 금메달은 좋은 거다.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지만 승부에 집착해 스포츠맨십에 어긋난 행동들이 나타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과열된 1등주의를 배제하고 경기를 사랑하고 즐기며 최선을 다해 그 성과에 만족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심판의 판정에 복종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승패에 구애됨이 없이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정신을 길러 줘야 한다는 얘기다. 또 공부하는 학생 선수 제도를 정착시키고, 스포츠를 즐기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

-리우올림픽이 끝난 지 오랜 데 아쉬움이 여전하다. 기초 종목의 저조한 성적도 그렇고,

"흔히 올림픽을 국가발전의 기폭제라고 하고, 총칼 없는 전쟁이라고 하지 않나. 국민 사기와 애국심 함양에서부터 국가 경제발전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성적 부진으로 국민들에게 상실감을 줘 체육인으로서 송구하다. 스포츠의 기본이며, 메달박스인 육상과 체조, 수영이 전멸했다. 정부가 꿈나무 발굴과 육성에 소홀한 탓이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이 세 종목에서 각각 29개와 13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초·중·고 꿈나무 발굴 육성을 위해 학교체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정책은 학교체육 활성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기본 종목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은?

"거듭 말하지만 스포츠의 기본 종목은 육상·체조·수영이다. 시·도 교육청 협조가 전제돼야 한다. 교육청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학교장은 필요한 기본 종목을 육성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시·도별로 종목별 특기 지정 육성학교를 운영하면 기본종목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다. 빙상의 경우 피겨 종목은 선수 수가 절대 부족하다. 김연아 선수가 처음 세계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한 2006년 3월 한국의 빙상선수는 436명이었고 그 중 피겨선수는 15명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기적이다. 개인적으론 마라톤과 핸드볼은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육성했으면 한다. 마라톤은 일제 때 손기정 선수가 깊은 감동과 환희를 안겼다, `우생순`의 신화를 만들어낸 여자핸드볼이 국민에게 미친 효과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마라톤을 보며 가슴 친 국민이 적지 않았는 데.

"나 역시 우리 선수가 꼴찌수준으로 추락한 모습에 씁쓸한 마음 감출 수 없었다. 마라톤 하면 대한민국이었다. 재건을 위해선 육상 중·장거리 부문을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게 급선무다. 기초가 중요한 만큼 시·도 교육청에 중·장거리 특기 지정학교를 운영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88꿈나무처럼 엘리트선수 육성프로그램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는 데.

"일본 스포츠 정책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일본은 30여 년 전 생활체육을 강화하는 체육정책을 폈지만 그 부작용으로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결국 약 10년 전 학교체육 중심으로 다시 엘리트 선수 육성에 집중해 리우올림픽에서 결실을 얻었다. 우리도 서울올림픽을 준비할 때 88꿈나무 육성으로 종합 4위의 기적을 만들었다. 전국소년체전을 더욱 활성화 하고 시·도 교육청과 선수육성 학교에 집중적인 예산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론 학교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하고 생활체육으로 자연스럽게 연계,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의 조화로운 발전과 체육인구의 저변확대를 유도하는 방법도 검토해봄직하다."

-학교체육이 많은 변화를 겪었는 데 어떻게 평가하나?

"특기자 제도 때문에 `4강 입상`이 지상 목표였던 선수들을 `공부하는 운동선수`로 변화시킨 건 긍정적이다. 2012년 1월 학교체육진흥법이 제정된 뒤 학교체육의 정상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으로 학교체육의 방향이 정착되고 있다. 이젠 모든 학생들의 체육활동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활성화시킬 토대를 만들어 한국체육 발전의 새로운 도약을 도모하는 게 과제라고 본다."

-체육회가 통합됐다. 바람직한 운영 방향은?

"엘리트 체육 중심의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 중심의 국민생활체육회가 지난 3월 하나가 됐다. 물리적인 통합은 됐지만 체육회와 체육인들은 현재 적지 않은 갈등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갈등과 분란을 접고 대한민국의 체육발전을 위해, 진정한 통합과 안정을 위해 다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경기단체와 시·도 체육회의 재정자립 대책 수립과 함께 체육인 일자리창출과 처우개선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국민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체육회가 되기 위해선 학교체육·엘리트체육·생활체육을 연계 발전시켜 스포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도록 노력을 다할 때다."

-마지막으로 충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충청은 이 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킨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다. 마라톤 이봉주, 여자골프 박세리에서 보듯 걸출한 스포츠 스타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화합하고 단결해 충절과 스포츠의 고장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충청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끌어주고 밀어주는 아름다운 애향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황수연 회장은

학교체육의 대부로 불리는 한국 스포츠계의 산증인이다. 체육교육 현장과 정부 및 대한체육회 등 스포츠행정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충남 공주가 고향으로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중등교원자격 검정고시를 거쳐 충남고와 대전여고 교사, 서울시교육청 장학관·평생교육체육과장, 서울학생교육원장, 환일고 교장을 역임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총지휘한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매스게임은 30년이 가까워지는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참가한 인원만 65개 학교 단체의 1만 6122명. 당시 황 장학관은 단군 이래 최대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마무리해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의 주역이 됐다. 매일 360대의 버스에 출연자를 실어 나르며 연습시켰다고 한다. 개회식 100일을 앞두고부터는 올림픽 경기장 야전 침대에서 숙식을 해결하다가 폐회식 뒤 병원에 실려 갔다. 황 회장은 "기록을 제대로 남긴다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1999년 소년체전이 폐지 위기에 몰렸을 때는 전국체육과장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맞서 싸워 대회 존속을 관철시켰다. 체육꿈나무 발굴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배경이다. 현장 경험뿐 아니라 이론에도 밝다는 평이다. 단국대에서 `한국체육행정의 변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 등을 지내며 각종 체육진흥 정책 방안을 수립해 현장에 착근시켰다. 체육계 처음으로 `체육행사연설문선집`을 냈고, `체육행정편람`, `올림픽교육자료` 같은 저서가 있다. 국제적 행사가 있을 때면 원고 요청이 쇄도하곤 하는 데 그의 기고문이나 논문은 체육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중일 청소년스포츠교류대회 단장으로 일본 나고야 대회에 참가하는 등 국제 스포츠계와의 가교 역할에도 충실했다.

충청향우회 중앙회 부총재를 지낼 정도로 충청 사랑이 깊다. 이력 중에는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와 민주평통 자문위원, 18대 대선 새누리당 선대위 조직총괄본부 체육대책위원장이 포함된다. 대통령 표창(2회)과 체육훈장 백마장, 국민훈장 목련장, 한국교육자 대상(한국일보사 제정), 황조근정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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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학교체육진흥연구회 회장이 통합체육회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황수연 학교체육진흥연구회 회장이 통합체육회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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