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양돈농가서 사라졌다 오창 농장서 강제노역 피해자 인계한 소 중개인 숨져 사실 확인 어려워

[청주]`만득이`로 불리던 지적장애인의 기구한 삶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적장애 고모(47)씨가 강제노역을 하게 된 충북 청주시 오창읍의 김모(68)씨 축산농가에 온 것은 19년 전인 28살 때다.

아버지는 고씨가 어릴 적 돌아가시고 어머니(77)와 누나(51)가 있었지만 모두 지적 장애로 힘겹게 살아오던 터라 고씨가 김씨의 농장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다. 19년 전 고씨가 집을 떠난 뒤 행방불명 신고를 하고 지금까지 생이별했다.

지난 1997년 여름, 고씨는 천안 양돈농장에서 홀연히 사라져 행방불명됐다.

당시 양돈농장 주인은 "막내아들처럼 여기던 아이가 점심 무렵 갑자기 사라져 주변 아파트 건설 현장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혼자 버스도 못 타는 고씨는 실종 직후인 그해 여름 김씨 부부가 운영하는 오창의 축산농가에 소 중개인과 함게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소 중개인에게 사례비를 건넨 뒤 고씨를 데려가면서 그때부터 `만득이`로 부르며 강제노역을 시켰다. 쌓이는 분뇨에서 풍기는 냄새와 해충도 들끓는 등 근로환경이 열악한 축산농가에 고씨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하게 된 배경에는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천안 양돈농장에서 일하던 그가 소 중개인에게 새 일터를 부탁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느닷없이 천안 농장이나 가족과 연락을 끊고 스스로 오창으로 와서 19년 강제노역을 할 이유도 없다.

소 중개인이 천안의 양돈농장에서 알게 된 고씨를 남몰래 데려왔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인부를 구하기 어려웠던 김씨가 중개인에게 사람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을 가능성도 있다.

진실 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소 중개인은 10년 전 교통사고로 숨져 진실을 밝히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종이냐 유괴냐 논란마저 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소 중개인이 사망해 김씨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만득이가 천안에서 27㎞나 되는 오창으로 옮겨가게 된 경위를 샅샅이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고씨가 김씨로부터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면서 김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청주청원경찰서는 이른 시일 내 고씨의 진술과 증거를 확보한 뒤 김씨를 다시 불러 조사한다고 17일 밝혔다. 고씨는 경찰에서 "축사에서 소똥을 치우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며 "소똥을 치우는 것이 싫다. 다시는 돌아가기 싫다"고 강한 거부감과 함께 극단적인 불안증세와 대인기피증을 보이기도 했다.

고씨의 심리적 불안증세 해소를 위해 경찰은 지난 14일 어머니를 상봉시켜 집에서 지내게 했고 조사 때도 장애인 복지 전문가와 상담가를 배석시켜 안심시켰다.

경찰 관계자는 "장기간 유리된 생활을 해왔고 낯선 환경에 놓이다 보니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며 "수사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고씨 치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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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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