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cuadam@daejonilbo.com

큰 선거 한 차례 치르면 소위 정치 지형이 변한다고 한다. 당연하다. 총선의 경우 연속 당선에 실패하면 그 자리를 누군가가 대체한다. 승자독식 게임인 대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엔 그런 대형 선거가 두 차례 있었다. 총선과 그 반동을 탄 대선이다. 그 결과로 새 정부가 탄생했고 국회는 과반 의석을 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분점하고 있다. 엄밀하게는 거여巨與) 대 다야(多野) 체제지만 교섭단체 지위를 획득한 정당은 두 당뿐이다.

작년 총선 때로 돌아가면 이런 메가트렌드급 파도는 충청권도 비켜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타했다고 봐야 한다. 정치 해일이 휩쓸고 가는 바람에 이른바 지역 정치판의 상수였던 앙시엥 레짐(구체제)이 도태되고 조금 과장하면 질서 재편의 토사가 쌓였다. 우선은 지역에서 익숙한 3당 구도가 마침내 깨졌다. 원내 3당이면서 지역을 정치자산으로 삼아온 선진당의 급격한 퇴조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총선 결과는 작년 연말의 대선 논리가 작동한 측면이 있다. 선거 시기가 대선 전이냐 대선 후이냐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보일 순 있겠지만 통상 같은 해 총선과 대선, 혹은 대선에 이은 총선이 치러지게 되면 표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총선 결과는 다가올 대선의 유력한 전조였던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두 선거를 대하는 충청권 표심 역시 비슷했다. 되는 쪽을 전략적으로 선택했고 건조하게 표현하면 밴드 웨건 효과를 보였다는 얘기다.

총선에서 특정한 에너지가 관통하면 기왕의 질서부터 흔들린다. 충청도가 그랬다. 명맥을 부지해온 지역정당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으며, 그 직후 비상대책위 체제를 꾸렸지만 그건 당의 파산절차쯤에 불과했다. 몇 달 연명을 했지만 대선을 앞두고 여당에 흡수통합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그땐 그게 최선 아니면 차선이었을 것이고 다른 제3의 선택을 놓고 따지고 말고 할 계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왜소한 공당이지만 스스로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한 게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난 결과로 볼 수 있다.

해가 바뀌어 새 정부가 등장한 건 지난 1년간의 정치사이자 선거사다. 국회도 물갈이 되고 정권의 주류세력 교체가 이루어진 건 불가피한 귀결이다. 그 점을 인정 안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총선, 대선 결과에 충청권은 만족하는가 하고 되묻고 싶어진다. 짐작건대 수긍하는 쪽의 비율이 크게 높을 것 같진 않다. 여러 사유가 있겠으나 포괄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집단 상실감'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본다.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지금의 여당과 합치고 유사한 정서의 집합체인 지역여론은 대선에서 여권 후보를 지지했다. 부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여기까지는 있는 그대로의 팩트다. 문제는 지역 민심 내면에 상처받는 속성이 꿈틀거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밑도 끝도 없다면 계면쩍은 정서일지 모르나 그런 빌미를 준 듯한 정황이 실재한다면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닐 것이다. 그 화풀이를 제일 먼저 맞기 십상인 대상은 지역의 여당 정치인들이다. 여론을 등에 업고 정권 창출에 견마지로를 보탠 자부심을 각성시키려는 행위일 수도 있고 주권자로서의 자기책망적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솔직히는 새 정부를 타깃으로 겨누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권 초반이라 어수선한 입장은 이해되지만 국정운영을 위한 인적 자원 세팅 과정에서, 또 국책 과제 재정비 과정에서의 충청권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최소한의 기대치에 부응하는지 확신이 안 서기 때문이다. 큰 보따리를 풀어놓고 죄다 구매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를테면 원래 이전 정부 때부터 거래해온 주요 비즈니스에 성의 정도는 보여달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령 정책적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를 까닭이 없고, 인재등용 문제와 관련해 지역 출신 인사들이 제척되는 현실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과거의 선택인 총선 때를 생각하는 여론이 늘어나는 건 까닭 없이 불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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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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