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천재 작곡가’ 삶의 고통 담아-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35세에 요절한 젊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는 음악 사상 최대의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미 네살 때 한번 들은 곡은 칠 수 있었다고 하며 다섯 살 때는 아버지에게 조기교육을 받아 글자를 쓰기 전에 먼저 작곡을 할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궁정 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의 철저한 음악교육은 천재 모차르트가 되기 위한 첫 밑거름이 되었으며, 1762년부터 시작된 연주 여행은 그에게 나라마다의 개성 있는 음악스타일과 새로운 지식, 작곡 기법 등을 습득하게 하여 자유로운 예술혼과 다른 음악가들과는 상이한 차별성을 주었다.

때로는 바흐의 고귀한 기품을 담아내고, 때로는 베토벤의 음악처럼 무겁지는 않지만 깊이를 담아내며, 때로는 슈베르트의 여린 소년의 감성처럼 아름다운 동심을 담아낸다. 또한 이탈리아의 명량함과 독일의 건강한 화성, 그리고 Sonata Form에 중독증이 있던 고전주의 시대의 단정한 형식 안에서도 무한한 창작력과 음악성을 겸비하고 있다.

음악학자 아인슈타인의 `모차르트는 이 지상에선 단지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라는 말과 상통하듯 모차르트 음악에는 인간이 만들었다는 인위적인 창작의 느낌을 주지 않는다. 모차르트 음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적 보편성과 자연스러움을 가진다. 그의 음악을 `천상의 것`으로 비유하는 이유는 이러한 보편성 안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이유 없는 반음계와 화성, 음악적 전개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3대 교향곡 중에서 유일하게 단조로 쓰여진 작품이 있다. 교향곡 40번으로, 가장 보편성을 띠면서도 인간의 슬픔, 서정성, 다양한 색채와 화성감, 맑은 기품 등을 모차르트 음악의 `소우주`를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이 작품에 대하여 슈베르트는 `천사가 이 가운데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독창성, 반음계적 표현, 풍부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걸작으로 1788년 6월부터 8월에 이르는 짧은 시기에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18세기의 전형적인 표현방식과는 달리 자유로운 모차르트만의 표현방식들이 집합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모차르트의 표현방식만큼 다양한 이 작품에 대한 평이 존재하고 있다. 슈만은 이 곡을 듣고 `가볍고, 고대 그리스적인 우아함이 깃들어있다`라고 말했으며,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실내악적 작품`이라고 말했고, 잭 웨스트럽은 `오페라 정신`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 작품에 대한 평은 매우 다양하다. 그 가운데 H.C. 로빈스 랜던은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조울증을 반영한 작품`이라고 평하였다. 왜 그랬을까? 교향곡 40번이 작곡되던 1788년 여름은 모차르트가 재정상태가 파탄지경에 이른 시기이다. 그 이후에도 모차르트는 푸흐베르크에게 `만약에 당신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당신의 친구이며 형제인 메이슨의 영예와 마음의 평화 그리고 아마도 그의 삶 자체가 파멸해버릴 것이오.`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띄울 정도로 재정적 궁핍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모차르트 만년에 빈의 궁정과 귀족들은 그에게 냉담하였다. 사실 1788년부터 1790년까지의 터키전쟁으로 많은 귀족들은 전쟁터에 나가있었으며 이러한 전시적 내핍으로 빈의 음악예술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 상황이었다. 또한 1787년, 모차르트는 황제의 궁정음악가란 영예로운 지위를 얻었지만 실질적인 재정적 보상은 없었다. 점차 경제적으로 몹시 궁핍해졌으며 늘 빚에 쪼들리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항상 모차르트 곁을 지켜주었던 친구이자,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1787년에 타계한다. 모든 상황이 안 좋았던 모차르트의 말년에 작곡된 교향곡 40번은 이러한 비관적인 총체적 현실에서 비롯되어 단조로 쓰여졌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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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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