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정신 기리자" 너도나도 성금 행렬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1962년 4월
29일 충무공 탄신 제전에도 참석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1962년 4월 29일 충무공 탄신 제전에도 참석했다.
1962년 3월 14일 대전일보 1면에 ‘이충무공 기념사업 성금운동’이라는 조그만 사고(社告)가 실렸다. 417회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을 앞두고 유물전시관 건립과 고택(古宅) 보수, 주변 환경 정비 등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방치돼 퇴락했던 현충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 고조와, 대대적인 정비 및 성역화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기사였다.

대전일보는 캠페인을 시작하며 “충무공은 우리 고장이 낳은 명장이요 우리나라의 빛으로서 그 분을 모신 현충사에 있으나, 보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허술한 모습으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적었다. 1706년 건립된 현충사는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고, 일제 때 유적보전회가 조직돼 1932년 현충사를 중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허나 일제 식민지 지배하 현충사는 버려지다시피 방치됐고, 해방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충무공 기념사업은 지역 현안 사업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둔 사건이다. 충청권에서 시작하여 온 국민이 참여하는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됐고, 훗날 아산 현충사가 본격적으로 정비돼 민족정신의 성소(聖所)로 자리 잡는 계기를 제공했다.

대전일보는 현충사 정비 및 보수를 위해 충남도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했다. 14일자 3면에는 유물전시관 건립과 환경 조성 및 식수, 도로 보수, 충무공 고택 보수 등의 사업계획을 소개했다. 첫날 윤태호 충남지사가 1착으로 1만환을 기탁하고 이어 대전일보, 도청 공무원, 시장·군수 등의 기부 행렬이 잇따랐다. 특히 대전·충남 초중고생과 교직원들의 참여는 놀라울 정도였다. 변호사, 농협직원, 동장, 은행원, 극장, 기업들도 힘을 보탰다. 경남지사와 제주지사, 삼척경찰서장과 서울 배화여고 교장 등 전국에서 성금이 답지했다.

4월 24일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50만환을 기탁했다. 충무공을 기리기 위한 사업이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에 감동하여 성금을 보낸 것이다. 박정희 의장의 참여를 계기로 모금 운동을 더욱 활기를 띤다. 동아주물, 한전 충남지점, 금호중, 부여중, 천안농협, 서울 광화문우체국, 서산군, 공주여중고 등 충남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성금이 답지했다. 윤태호 충남지사와 배무남 대전시장이 잇따라 각계의 동참을 호소했다.

대전일보는 4월 25일까지 5백만환이 모금됐지만 목표액 1천만환을 달성하기 기간을 1달 더 연기한다. 현충사 보수 및 정비에는 국비 1천만환 도비 5백만환 외에 1천만환이 더 필요했다.

대전일보는 지역민과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현충사 공사 진행상황을 취재해 실었다. 박필교 기자가 현장을 답사하여 온양역 광장의 비각 보수, 현충사 입구 참배도로 보수와 교량가설, 유물전시관 건립, 주변 석축 설치와 휴게실 및 주차장 조성 현황 등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4월 25일 경남 충무시에서 열린 한산대첩기념제를 취재, 보도하기도 했다.

4월 29일 열린 충무공 탄신 417주년 기념행사도 집중보도했다. 본사에서 이성영, 이은창 취재 기자 2명과 정헌태 사진부장을 온양 현지에 ‘특파’하여 박정희 의장의 움직임과 행사실황, 현충사 정비 모습 등을 입체 취재했다.

1면 톱기사에 ‘충무정신 받들어 민족중흥의 길로’라는 컷 아래 이순신 장군 탄생 417주년 경축제전 실황을 자세히 담았다. 박정희 국개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축사에서 “공(公)의 위대한 공덕과 유훈을 추모하며 제전을 베풀게 된 것을 근래 보기 드문 민족적 쾌거”라며 “충무공 정신을 우리나라 사회에 다시 재현시켜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국가재건에 총력을 경주하자.”고 밝혔다. 박 의장은 제전을 마친 뒤 봉찬연예(奉讚演藝)를 관람하고 신축 유물전시관 테이프 커팅, 기념 식수, 시궁, 충무공 묘소 참배 일정을 소화했다.

대전일보는 4월 29일자부터 ‘이충무공 유적답사기’를 연재했다. 이은창 기자가 현지를 발로 뛰면서 4회에 걸쳐 고택과 현충사, 각종 유물 등을 1면에 상세하게 소개했다. 성금모금 운동은 5월말까지 계속 전개돼 마감일까지 총 1140만8485환이 답지했다.

‘이충무공 기념사업 성금운동’은 대전일보가 전개한 캠페인 중 가장 성공한 사업의 하나였다. 현충사 정비에 필요한 자금 3천만환 중 중앙정부 보조금 1천만환보다 많은 액수를 충남도민과 전 국민의 성금으로 모아 대준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윤보선 대통령의 하야로 최고 권력자로 부상한 박정희 의장이 성금을 내고 격려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 의장은 충무공 탄신행사에 참석함으로써 이 행사에 무게를 실어줬다. 그후 박정희는 대통령에 오른 뒤 1966년 4월부터 현충사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매년 제전에 참석하는 등 충무공을 정신적 사표로 추앙했다. 박 대통령의 지속적인 관심 덕분에 충무공의 공적과 삶이 재조명되고 국민적 민족적 위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퇴락한 충무공 유적을 정비하자는 대전일보와 충남도의 소박하고 순수한 캠페인이 국가적 사업과 행사로 발돋움한 것이다. <끝>

김재근<대전일보 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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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충무공을 정신적 사표로 추앙했고, 대대적인 현충사 성역화도 진행했다. 1969년
4월 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에서 활을 쏘는 박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은 충무공을 정신적 사표로 추앙했고, 대대적인 현충사 성역화도 진행했다. 1969년 4월 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에서 활을 쏘는 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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