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깊은 인연’ 미24사단장 딘 소장

대전을 긴급 방문한 워커 사령관(왼쪽)은 딘 소장(오른쪽)에게 “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하라”고 명령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제공
대전을 긴급 방문한 워커 사령관(왼쪽)은 딘 소장(오른쪽)에게 “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하라”고 명령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제공
대전전투와 관련 숱한 일화를 남긴 인물이 미 24사단 딘 소장이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그는 종전 후 군정장관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어 제주 4.2사태 진압을 지휘하기도 했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 24사단 딘 소장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맥아더 장군의 명령을 받고 부랴부랴 한반도에 투입됐다.

7월 20일 대전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패한 딘 소장은 모든 연락이 끊긴 채 몇명의 부하를 수습하여 금산을 거쳐 후퇴 길에 오른다. 부상병에게 물을 떠다주려다 계곡으로 굴러떨어져 실신했고, 길을 잃은 채 홀로 산속을 방황하게 된다. 한달 남짓 헤매던 그는 8월25일 전북 진안군에서 좌익의 밀고로 포로가 됐다. 딘 소장은 6.25전쟁 중 포로가 된 최고위 미군 장교였다.

딘 소장 실종 직후 미군은 대전역으로 기관차를 보내 구출을 시도했다. 미군 33명과 철도 승무·신호원 3명을 태운 열차는 옥천을 출발, 인민군의 총알세례를 뚫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1시간 가량 역구내를 수색했지만 딘 소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적의 공격으로 후퇴에 오른 결사대는 세천역에서 또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옥천역에 도착했을 때 생존자는 미군 1명, 철도원 2명에 불과했다. 당시 작전에 동원됐던 미카3-219 기관차는 현재 대전철도차량정비단에 보존돼 있다.

딘 소장은 압록강 근처 만포진에서 3년여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 휴전이 이뤄져 1953년 9월 4일 석방됐다. 이승만대통령은 그에게 무공훈장을, 미 의회도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훈장과 관련 그는 “지휘관으로서는 나는 훈장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밝혀 미국 사회를 감동케 했다. 한국정부에 자신을 밀고한 사람을 선처해달라고 호소, 감형을 받도록했다. 1981년 82세로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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