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제관꾸미개(남성용)-부여 능안골고분군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사진=국립부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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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귀족의 집단무덤 중 하나로 꼽히는 부여 능사리 능안골고분군은 주변에 백제 능산리 무덤 동쪽에 있는 백제나성(사적 제58호)과 청마산성(사적 제34호) 등 역사적인 유적지가 밀집돼있다. 당시 높은 금속 기술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에, 더구나 귀족들의 집단 무덤이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유물이 출토된 것은 자명한 사실. 당시 무덤의 형식과 출토된 유물을 통해 6-7세기경 백제 귀족층의 무덤으로 추정됐다.

이곳은 1994년 12월 부여공설운동장 건립을 위해 도로공사를 하던 중 백제고분이 노출돼 발굴조사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1995부터 2년간 조사된 능안골고분군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30여기, 돌덧널무덤(석곽묘) 20여기, 독무덤(옹관묘) 4기 등이 발견됐다. 홑무덤(단장묘)이나 합장묘, 어린아이 무덤 등 다양한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주(紬)·사(紗) 등의 옷감 및 금귀걸이, 금동귀걸이, 은제관장식과 요대장식, 철제 관고리와 관정, 성인 남녀와 어린이의 뼈 등 각종 유물이 출토되면서 백제후기의 묘제형식과 당시의 직물 등 백제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꼽히고 있다.

이중에서도 은제관꾸미개는 백제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유물이다. 이전부터 논산 육곡리, 남원 척문리, 나주 흥덕리, 나주 복암리 3호분, 부여 화황리, 등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에서는 은으로 만든 꽃 모양의 관꾸미개가 출토되고 있다. 관모의 앞부분에 달린 역삼각형의 관모테에 꽂는 장식품인 관꾸미개는 형태는 어느정도 정형화돼있는 것은 사실. 얇은 은판을 길게 오려 줄기를 만들고 좌우 곁가지에 꽃봉오리를 오려 만든 후 가운데를 V자 모양으로 접는다. 무늬는 좌우대칭이며, 꽃봉오리, 잎, 줄기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줄기의 양 옆에 달린 잎의 모양에 따라 크게 남성용, 여성용 등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삼국사기’와 ‘백제본기’에 따르면 왕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모자에 금꽃으로 장식하였고, 6품 나솔 이상의 관리들은 은꽃으로 장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부여 능안골 고분군 36호분에서는 은제관꾸미개와 더불어 역삼각형 모양의 철제테가 발견됐는데 이는 은제관꾸미개를 세워 붙일 수 있는 모자의 심으로 추정하고 있다.

능안골고분군의 은제관꾸미개는 남녀합장묘인 36호에서 2점, 44호에서 1점 총 3점이 출토됐다. 이 은제관꾸미개는 여성용에 비해 무늬가 복잡하고 화려한 남성용이다. 여성용과의 차이점은 맨 위의 꽃봉오리 외에도 좌우에 각각 2개씩의 가지가 더 있고 여기에 꽃봉오리와 잎이 달려있어서 모두 5개의 꽃으로 장식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형태의 은제관꾸미개는 부여 하황리, 나주 복암리 3호분 5호 석실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36호 돌방무담에서 은제관꾸미개와 함께 출토된 철제테에는 천이 여러 겹 감겨 있었으며, 분석 결과 평직물과 나(羅·그물 형태)로 확인됐다. 문헌기록에 나타나고 있는 나관(羅冠·삼국시대에 관인·귀인계급에서 착용한 관모)의 실상을 확인시켜 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은제관꾸미개는 논산과 남원 등 주로 지방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백제의 지방통치와 관련된 것으로 파악된다. 몇몇 학자는 그 지역의 기반을 가진 지방의 우두머리가 사용했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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