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출토 비파형동검 중 最古

사진=충남대 박물관 제공
사진=충남대 박물관 제공
-대전 비래동 출토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비파형동검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북아시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송리형토기와 함께 고조선을 대표하는 표지유물로 알려져 있다.

기원지가 중국 요령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출토량도 많아 요령식동검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이 동검은 한반도 중서부지역인 대전 비래동 지석묘, 부여 송국리 석관묘 등에서 드물게 출토된 바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아랫부분이 둥글게 배가 불러 비파의 형태를 이루며, 검몸의 중앙부에 돌기부가 형성되어 있다. 검몸과 검손잡이를 따로 주조하여 결합한 다음 사용하는 조립식인데, 중국 중원지역의 서주식 동검과 북방의 오르도스식 동검과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의 세형동검에도 이어진다.

비파형동검의 역사적 주인공으로는 요서지역의 동호족과 요동지역의 예맥족으로 보는 설이 공존하고 있다.

분포는 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었는데, 양 지역을 아우르는 정치적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의 출토품에서는 자루를 끼우는 슴베에 홈이 나 있는데, 중국 및 북한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특징에 해당한다.

비파형동검은 송국리문화의 개시기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송국리문화는 집약적인 벼농사를 기반으로 구축된 농경사회로 알려져 있다. 송국리문화 단계에는 마을 규모의 확대, 목책 및 환호와 같은 방어시설의 출현, 마을의 기능 분화 및 위계화 등 사회복합도가 이전 단계의 사회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며, 한반도 복합사회 출현의 배경이 되는 시기이다.

송국리문화의 표지적 유적인, 부여 송국리유적의 1호 석관묘에서는 석검, 석촉, 관옥 등의 유물과 함께 1점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함께 출토된 석검과 석촉은 송국리문화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는 것들이다.

대전 비래동 1호 지석묘(고인돌)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은 길이 16.9㎝, 최대 폭 3㎝로 비교적 짧은 편이며, 비파형동검의 특징인 돌기부가 검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슴베 부분에는 홈이 확인되고 있어 비파형동검으로 분류되고 있다. 1호 지석묘와 동시기의 유적으로 알려진 대전 비래동유적은 송국리문화에 선행하는 단계의 마을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래동 비파형동검은 1호 지석묘에서 함께 출토된 토기와 석촉들의 형태로 보아 한반도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전 대덕구 비래동 비래골 마을회관 앞 논에 고인돌 2기가 있고, 맞은편 구릉 정상부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1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절반이 마치 입석처럼 세워져 있는데, 1963년 새마을 운동 당시 동네 주민들이 덮개돌을 쪼개 표면에 새마을기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2호 고인돌은 1호 고인돌에서 동쪽으로 약 5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9m, 너비 2.6m이고 표면에는 알구멍(성혈·풍년을 기원하거나 자식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든 구멍) 16개가 불규칙적으로 표현됐다. 이 고인돌에서는 비파형 동검 1점과 삼각만입형 석촉 3점, 홍도 1점이 출토됐다. 비래동 고인돌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은 금강 유역에서는 최초의 예이며, 함께 나온 석촉 등의 형식으로 보아 축조시기는 약 B.C7-6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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