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소산성 출토·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사진=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사진=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여 내 부소산성은 1400여 년 전, 도성의 비원으로 사용됐다. 왕궁에서는 침략을 대비한 최후의 방어용 성곽이기도 했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성으로 불린 이곳은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백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에 달한다.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 산성을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으로 쌓은 복합 산성이다. 부소산성 주변에는 다시 청산성과 청마산성 등의 보조 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성흥산성의 지원을 받았다. 과거의 군수품 창고 터 등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낙화암과 고란사 등이 있다.

이곳에서 금동광배 등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것은 지난 1988년. 광배(光背)는 그리스도상이나 불상 머리 뒤의 빛을 나타낸 의장을 뜻한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신비함과 위대함을 상징한다. 중근동(中近東)의 고대신이나 황제의 배후에 둥근 모양의 광명을 나타낸 데서 비롯됐다. 불교미술에서 광배는 1세기에 시작된 간다라미술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불상의 머리광배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부소산성 출토 광배는 화려한 꽃무늬가 돋보이며 다양한 기법이 사용돼 묘미를 더하며 백제 도금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연화와 넝쿨무늬, 연주문 장식으로 비교적 화려한 무늬가 앞면에 새겨졌고, 이 금동 두광은 지금 12.7㎝의 원형 광배로 두겹의 동판이 가장자리에 못을 박아 앞뒤로 붙여졌다.

상의 머리둘레를 장식했을 광배의 표현은 중앙 부분에 크고 작은 연화를 번갈아 돌려가며 연판잎의 끝부분을 도려내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특히 광배 중앙의 연화와 그 둘레를 장식하는 투각의 넝쿨 무늬 사이에는 둥근 구슬의 연주문이 촘촘히 둘려져 있다. 광배 문양의 윤곽을 따라서 장식한 점선은 이 광배를 보다 효과적으로 장식했다.

현재 알려진 백제의 불상 중에서 광배 형태로 상에 붙어있거나 따로 전래해 전해진 것을 포함해 가장 화려하면서도 거의 온전한 형태로 발견돼 눈길을 끈다.

현존하는 삼국시대 불상 중에서 광배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아 비교하기 어려지만 일본의 법릉사 헌납보물 중에는 비슷한 형태의 광배들이 원래의 상과 분리되어 전해 내려오는 예가 많다. 문양상으로는 백제의 것과 똑같지 않으나 투각의 연화, 당초넝쿨무늬의 조합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이외에 백제의 사비 도읍기의 왕궁지로 알려진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제428호)에서 지난 2003년 금동광배가 출토됐다. 그 형태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삼국시대의 광배 중 매우 특이한 예로 꼽힌다. 6개의 ‘귀’(고다리) 달린 백제 금동 광배가 국내 처음으로 출토된 것. 높이 12.9㎝, 너비 10.3㎝, 두께 0.25㎝의 이 금동광배엔 양쪽으로 3개씩, 모두 6개의 화염장식과 같은 부착물을 위해 귀가 달려 있다. 학계에서는 광배 가장자리에 아마도 비천을 주조해 꽂았을 거라 추측한다. 이는 중국 북위 보태(普泰)2년명(532년) 금동보살일광삼존입상의 광배와 유사해 백제와 북위의 교류관계를 추정케 해주는 자료로 꼽히기도 한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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