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야 최고급 무덤서 출토 복식품 구성 요소… 신분 상징

환두대도
환두대도
천안 용원리 출토 ‘환두대도’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백제시대 칼은 양쪽에 날이 있는 선사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검과 달리 한쪽에만 날이 있는 도(刀)이다. 검이 찌르는 기능이 위주라면, 도는 한쪽 날의 강력함을 이용해 베는 기능을 수행하는 병기다. 이 때문에 칼은 철기와 함께 발달해 왔다. 중국 한대(漢代)에 단조철기가 발달하면서 철제 장검이 등장했고 이어 철제 칼이 발달하게 되는데, 손잡이의 끝부분이 둥근 고리형으로 되어 있고 무늬가 없는 소환두대도(素還頭大刀)부터 제작된다. 이러한 큰칼은 3세기대의 마한지역 수장층에게 대형의 창과 함께 급속히 확산, 보급됐다.

4세기 무렵부터 백제의 환두대도는 급격한 전기를 맞이해, 이전에 비해 칼끝이 뚜렷하게 날카로워지고 둥근고리나 손잡이부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장식대도가 점차 유행하게 된다. 이 장식대도는 백제 지역의 뛰어난 금속 세공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것으로서, 백제 지역 재지 세력들의 수장급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지방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위세품으로 생각된다.

천안 용원리 고분에서는 소환두도, 상감환두도, 용봉문환두도 등의 다양한 장식대도가 출토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용봉문환두대도’이다.

용봉문환두대도는 환두와 환 내부에 용봉문을 장식한 대도로서 무령왕릉 출토품이 대표적이다. 천안 용원리 1호석곽묘 출토 큰 칼 또한 무령왕의 것과 같이 고리와 고리안쪽 장식을 동으로 주조한 후 은도금 한 것이 특징이며, 고리 표면에는 2마리의 용이 표현되어 있다. 고리안쪽에는 머리 위로 3개의 벼슬이 있고, 뾰족한 입에 둥근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태이다. 그동안에는 이 고리안쪽의 무늬를 봉황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몸통에 비늘은 없지만 둥근 고리에 다리가 이어져 있고 무령왕릉 출토품과 기본 모양이 동일하여 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용은 전체적으로 잔무늬라던가 세부적인 표현은 많지 않으나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모습이다.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부리가 앞으로 구부려져 있고, 벼슬이 뒤로 뻗어있다. 전체적인 칼의 길이는 78cm이다.

12호 석곽묘 출토 은상감봉황문환두대도(銀象嵌鳳凰文環頭大刀)는 전체길이가 81.5cm로 고리에 봉황이 있다. 처음 출토 당시에 표면 부식이 심하여 대도의 전체적인 형상 파악이 힘들었으나, 보존처리 결과 환두는 철로 봉황을 조각하면서 은상감으로 봉황의 몸체를 표현했고, 나머지 여백에는 금박을 입히고 가운데는 은상감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한 봉황의 머리를 둔 매우 화려한 환두대도임이 확인됐다. 고리는 원형으로 중앙에 봉황의 머리를 장식하였고, 바깥쪽에 봉황의 몸체를 두었다. 가운데 배치된 봉황은 뭉툭한 모양으로 머리와 벼슬만 형상으로 나타나게 만들고 은상감으로 세부모양을 표현했다. 봉황은 머리를 약간 치켜세운 듯하나 정면을 주시하고 있으며, 부리가 아래로 쳐져 있으며, 벼슬은 표현됐으나 머리에 그대로 엉켜있다.

이 두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무령왕릉 출토 용봉문환두대도가 백제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백제에서 제작된 용봉문환두대도가 공주 수촌리-천안 용원리-무령왕릉 순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용봉문환두대도가 백제의 중앙과 지방 그리고 가야와 왜의 최고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점은 이 시기의 장식대도가 무기의 일종이었다기보다는 복식품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서 소유자의 신분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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