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새긴 뒤 먹글씨 제작 눈길… 天·无 등 기록 제사의식 쓰인 듯

목간이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죽간(竹簡)과 함께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목편(木片)으로 목독(木牘) 또는 목첩(木牒)이라고도 불린다. 나무를 폭 약 3㎝, 길이 약 20-50㎝, 두께 3㎜ 정도의 긴 판자모양으로 잘라 거기에 묵서(墨書)했다. 원래는 대를 갈라서 한장 한장 끈으로 꿰어 사용했지만, 훗날 목편으로 바뀌어 종이가 발명될 때까지 썼다.

한국의 낙랑 채협총(樂浪彩塚)에서도 출토됐는데, 이들 목간에는 ‘논어’(論語)의 단편도 있고 군대의 조직·우편제도·교통 및 여러 가지 물품의 이름을 기입한 것도 있어서 그 방면의 연구는 점차 중요시되고 있다.

백제시대 첫 목간은 1985년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발견됐다. 목간은 몇 년전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발견된 목간처럼 운송 시 물품의 수량이나 수취인 등을 알려주는 ‘물품 꼬리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여 능산리절터에서 출토된 이 목간은 자연 상태의 나무 앞뒷면을 약간 가공하여 만들어서 단면이 원형에 가깝고 기둥모양을 하고 있다. 네 면 모두 글씨가 남아 있는데, 이중 대칭되는 두 면은 새김글씨와 먹글씨, 다른 두 면은 먹글씨 흔적만 남아 있다. 새김글씨와 먹글씨가 남아 있는 면 중 한쪽은 윗부분을 둥글게 깎아 턱을 만들어 끈으로 매달 수 있게 했는데 그 형태가 남근(男根) 모양을 하고 있다.

글씨는 가장 위쪽에 ‘무’(无)가, 그리고 그 조금 아래에 ‘봉의’(奉儀)가 새겨져 있고, 이 새김글씨 아래로 7자의 먹글씨 흔적이 남아 있다. 글씨의 아래는 앞뒷면을 약간 넓게 깎아내고 좌우면도 다듬어서 쐐기 형태로 만들었다. 그 반대면의 위에는 ‘무봉’(无奉)이라는 두 자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천’(天)자가 거꾸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전후면 전체 명문 중에서 후면의 ‘천’만이 거꾸로 음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천’자의 방향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머지 글씨가 거꾸로 쓰인 셈이 된다. ‘천’을 기준으로 목간을 세울 경우 쐐기 형태의 끝 부분은 아래가 아닌 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쐐기 형태로 다듬은 윗부분에 직경 0.3㎝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는 ‘천’자를 바로 세운 상태에서 어딘가에 매달 수 있도록 고안된 듯하다.

먹글씨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목간의 일반적인 양상임에 비추어 보아 문자를 새긴 뒤 그 밑에 다시 먹글씨를 남긴 이 목간은 매우 특이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먹글씨에 비해 잘 지워지지 않는 내구성까지 갖추고 있어 선별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봉(奉)이나 거꾸로 새겨진 천(天), 특히 불경을 욀 때의 발어사인 무(无) 등이 새겨진 점으로 보아 새김글씨 목간은 제사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봉의’ 아래 먹글씨를 ‘길 옆에 세우다’는 의미로 판독할 경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던 흔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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