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크게 입 벌린 형상 백제인 기교·표현력 돋보여

백제금동대향로, 무령왕릉 출토 국보급 유물 등 충청지역 대표문화재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국립부여박물관과 공주박물관 전시실과 수장고에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안됐거나 그만큼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숨겨진 유물이 무궁무진하다. 두 박물관의 추천을 받아 백제인의 숨결이 녹아있고, 장인정신이 오롯이 담긴 총 40선의 유물을 소개한다.

1. 호자(虎子)

부여 군수리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지난 1979년 3월 부여 군수리나성 서문터(西門址)에서 출토된 호자(虎子)는 호랑이의 모습을 한 동물이 앉아있는 모습으로 얼굴 부위에는 둥그렇게 구멍이 뚫려있는 것인데 높이가 25.7cm, 주둥이의 지름은 6.6cm다.

언뜻봐서는 그 용도가 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발견 후 남성용 소변기로 추측할 수 있었던 까닭은 중국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이 발굴되었는데 문헌에 소변통이라고 쓰여있기 때문. 중국 역사서를 보면 옛날에 기린왕이라는 산신이 호랑이의 입을 벌리게 하고, 거기에 오줌을 누었다고 전하며, 새끼호랑이 모양을 하고 있다고 호자라고 부른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인의 위트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호자는 뒷발을 약간 굽혀서 앞발에 힘을 모으고 상체를 들어 좌측으로 힘 있게 머리를 돌린 후,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몸체는 통통하고 발은 발톱을 감춘 듯이 오므렸다. 얼굴에는 눈, 코, 입을 표현했는데, 눈동자는 점을 찍어 조그마하게 표시하고 코도 낮은 콧등 끝에 두 점을 찍어 콧구멍을 표현한 후, 코 아래와 눈두덩 밑에 눈썹과 수염을 각각 음각했다. 등에는 손잡이가 부착되었는데, 들어 올린 꼬리를 자연스럽게 손잡이로 만든 듯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질감이 부드럽고 호랑이의 표현이 매우 해학적이며 포효하는 자세로 흐트러짐이 없다.

호자는 중국 남조(南朝)의 월주요(越州窯)에서 청자로 만든 것이 여러 점 전해 온다. 남조의 호자는 호랑이의 몸체가 엉덩이와 앞가슴 부분이 둥그렇게 표현되어 사실성이 떨어지고 마치 양의 몸 형태와 같다. 반듯이 꿇어앉아 입을 헤벌리고 고개를 쳐들고 있는데다가 안면 묘사도 미숙해서 호랑이로 판별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남조 호자를 본받아 만든 백제의 토제 호자는 남조의 것에 비해 네 다리가 들려 있고, 그 발과 다리가 각기 방향을 달리해서 움직이려는 듯한 동세(動勢)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네 다리의 움직임과 길게 뽑은 목과 머리 그리고 옆으로 돌려 위로 향한 고개 등은 매우 생동감이 있고, 몸체의 흐르는 곡선 또한 매우 유연하다. 남조의 호자는 안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의도했으나 실패했지만 백제 호자는 안면의 눈과 코를 아예 간결하게 처리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추상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런 모든 요소는 백제 호자가 남조의 것보다 기교적인 측면에서 훨씬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표현력이 돋보이며 더 추상적으로 발전했음을 알려준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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