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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개소 40돌-김봉건 소장 인터뷰

2009-11-12기사 편집 2009-11-1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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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소중함 강의 등 지역민에 다가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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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과 소통하는 길을 더욱 넓힐 예정입니다.”

오는 17일 개소 40주년을 맞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봉건 소장(54)은 “대전으로 내려온 지 6년이 됐지만 지역민 곁으로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세미나, 강좌 등을 통해 지역민에게 더욱 다가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83년 미술공예연구실 연구관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김 소장은 30년 가까이 연구소에서만 잔뼈가 굵은 인물. 그랬기에 그에게 40주년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처음 문화재연구소로 왔을 땐 독립건물은 고사하고 한 사무실에 고고학, 미술, 건축, 무형 등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죠. 그런데 6년 전 대전으로 오면서 독립건물을 가질 수 있게 됐고 각 분야별로 독립적인 실을 구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만족할 순 없지만 예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죠.”

외형만큼 속도 알차졌다. 황룡사, 미륵사로부터 최근 풍납토성까지 우리나라 발굴기틀을 마련했고, 무형·민속 문화재와 관련 20년간 꾸준히 민속종합조사보고서를 냄으로써 그 변화의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문화재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보존과학센터를 만들어 보존과학의 획기적 전기에 발판을 놓은 것은 물론 그동안의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본, 러시아 등 해외연구소와 해외연구를 넓혀가고 있는 것은 큰 성과라는 게 김 소장의 얘기다.

“내부적으론 보다 튼실해지고 대외적으로는 성과를 내기위한 도약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조사, 연구를 위해서는 ‘국립문화유산연구원’식으로 연구소의 위상을 높여야 합니다. 인력과 예산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죠.”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국민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큰 과제로 꼽는다. 나아가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문화재는 전문가들만으로는 보존하고 지킬 수 없습니다. 이런 인식아래 국민들이 문화재 보호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특히 최근 잇단 개발로 도시민의 경우 문화재보존과 경제적인 것이 충돌하는 일이 많은데 문화재에 대한 소중함을 좀 더 인식한다면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공통의 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잊을 수 없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하드웨어를 만든 일”이라고 말한다. 2002년 소장 부임이후 독립건물에 이어 보존과학센터, 가야·부여·나주 등 지방연구소에 새 청사를 짓는 등 편안하게 연구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릇’을 만든 것이 보람이란다. 연구소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전통건축가다운 얘기다.

그러고 보니 40주년을 맞아 연구소 안에 전남 담양 소쇄원에 있는 정자 ‘광풍각’을 재현한 ‘청풍각’을 건립한 것도 그것의 연장선이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지조를 지키며 꿋꿋이 나아간다는 ‘청풍각’의 뜻은 그렇다치더라도 세월에 따라 건축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센서를 부착했다는 말에서 건축문화재를 사랑하는 장인의 풍모가 느껴졌다.

부산출신인 김 소장은 서울대 건축공학과, 런던대를 거쳐 1983년부터 문화재연구소에서 일해왔으며 미술공예연구실장 등을 거쳐 2002년 연구소장에 취임했다. 이후 2004년 전환된 개방형 소장직 초대 소장을 거쳐 2006년 공모를 통해 다시 뽑혔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개소 40주년을 맞아 일본, 중국, 몽골, 러시아 등 8개 문화재연구기관이 참여한 ‘동아시아문화유산포럼’과 ’조선왕릉학술심포지엄’, 무형문화재 기록영화, 사진전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고 있다.

최재근 기자 choijg2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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