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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금강의 어제와 오늘전](6)역사·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주 금강

2009-09-30기사 편집 2009-09-30 06:00:00     

대전일보 > 정치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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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감싸는 부드러운 능선…삶도 자연도 풍요롭고 아름다워라

첨부사진1①1970년대 공주 마암나루터 돗단배. 금강 물길을 따라 흐르는 한 척의 돗단배가 뒤로 보이는 산과 어우러져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는 듯하다. ②제12회 백제문화제 마라톤대회. 공주 시가지를 달리는 마라토너들을 주민들이 길 양쪽에 늘어서 응원하고 있다. ③금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공산성의 공북루를 배경으로 수학여행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당시 고등학생들. 멀리 금강교와 금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나룻배들이 한가로워 보인다. ④금강교 준공식에 모인 인파들. 1956년 9월 26일 6·25 전쟁으로 교량이 파손된 금강교가 4년여간의 복구공사 끝내고 모습을 드러냈다.

금강의 물길과 역사, 문화, 생태는 물론 금강에서의 삶의 모습까지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금강의 어제와 오늘전’ 공주시 전시회가 다음달 6일부터 12일까지 공주문예회관에서 열린다. 금산과 청양, 논산, 부여, 서천에 이어 여섯 번째 순회 전시회. 백제의 고도이자 금강문화권의 중심도시인 공주시의 금강을 탐색하는 한편 주요 전시 작품을 소개한다.



공주의 금강은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강이다. 또 계룡산과 더불어 공주에게 빼어난 절경을 선물해 준 어머니 같은 강이기도 하다. 산과 물의 경치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 공주의 금강이다.

충남지역 금강 물줄기 151㎞ 가운데 24%인 30㎞가 흐르는 공주는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유적은 물론 백제시대의 유적 등 역사·문화자원이 산재해 있고, 비단 같은 금강이 띠를 두른 듯 굽어 흘러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한 금강문화권의 중심 도시다.

금강은 그 물줄기를 따라 구간마다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보면, 상류지역은 적등강(赤登江), 공주 부근을 웅진강(雄津江, 금강), 부여에서는 백마강(白馬江), 강경에서는 강경강(江景江)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일러 금수강산이라고 하지만, 공주의 금강은 곳곳이 금수강산이다.

금강 연안에 자리 잡은 누각과 정자들은 바로 그런 절경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했던 시인들의 문화 공간 이었다. 독락정과 한림정, 금벽정, 벽허정, 사송정, 쌍수정, 안무정, 원산정 등 금강변의 8정자를 옛 어른들은 자랑했다.

조선시대의 대문장가 남수문은 저서 ‘독락정기’에서 금강을 ‘하늘과 물이 한 빛인데, 바람 불면 푸른 주름살이오, 달 비치면 은물결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금강은 아름다운 강이다.

특히 계룡산 줄기가 금강과 만난 마티산 국사봉 자락의 창벽(倉壁)은 천리 물길의 절경 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창벽은 금강이 공주시 반포면 도남리에 이르러 국사봉 자락을 적시고 급히 남쪽으로 휘돌아 가는 지점에 펼쳐진 폭 100m, 높이 25m의 기암기석이 조화로운 암벽이다.

뱃길을 오가며 바라보던 창벽의 아름다움은 지난 94년 도남리에 충남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이전함에 따라 길가에 찰싹이는 강물과 창벽의 절경을 어루만질 수 있게 됐다.

금강으로 유입하는 지천들 또한 그 아름다움이 금강 본류에 못지않다.

동학사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용수천은 빼어난 아름다움과 청량한 개울물로 인근의 대전 시민들과 계룡산 및 동학사를 찾는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왕씨 왕조가 망하면서 그들이 이곳에 은거해 살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왕촌천은 산간지대를 곡류하며 흐르다가 절정을 이르는 계곡을 만들어 낸다.

정안천은 차령산맥에서 발원해 남류하면서 정안면·의당면의 넓은 들판을 적셔주어 공주 제일의 곡창지대를 형성한다.

또 공주지역에서 가장 큰 하천인 유구천은 사곡에서 마곡사 계곡을 내려오는 마곡천을 합류하는데, 이 유구와 마곡사를 포함하는 골짜기는 예부터 ‘유구·마곡 양수지간에 만인이 살만한 길지가 있다’는 예언에 따라 타 지역 사람들이 대거 유구 땅에 몰려오기도 했다.

공주의 금강은 또 부여의 백마강과 더불어 백제와 백제문화를 제외하면 어떤 것으로도 상징하기 어려운 백제와의 인연을 간직한 곳이다.

백제의 유적과 유물이 집중돼 있고, 도로 및 다리 이름, 지명 등 모두 백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과거 백제의 고도였다기 보다는 아직도 백제의 도읍인 것처럼 보인다.

땅을 조금만 파도 유물이 쏟아질 것 같은 공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비록 백제 웅진시대 5대왕(문주, 삼근, 동성, 무령, 성왕) 64년(475-538)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백제의 왕도가 있었던 곳이지만 무령왕릉과 공산성, 그리고 금강과 곰나루의 전설에 백제의 혼들이 아직도 꿈틀거리는 곳이다.

특히 금강이 한눈에 보이는 공산성은 백제시대 중요한 산성였다. 원래 이름은 웅진성이었으나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렸다. 성벽 안에는 7·8미터의 호(壕)와 우물터, 광복루, 쌍수정, 연못터 등이 남아 있어 공주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공산성 맞은편에 무령왕릉이 있다.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2900여 점의 유물과 12점의 국보급 유물이 출토됐다. 실제 왕릉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똑같이 생긴 모형 능을 살펴볼 수 있다.

무령왕릉과 충남지역에서 출토된 백제 문화재를 중심으로 국보 19점 등 약 1만1000여점의 문화재들을 보존 전시하고 있는 국립공주박물관도 있다.

백제의 고도이자 금강문화권의 중심도시인 공주는 역사·문화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조화된 금강 살리기를 통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곰나루 관광기반 확충사업과 생태공원 조성, 금강 8정 정비 사업 등을 통해 역사·문화자원을 복원하고 생태 및 수상 관광벨트를 구축해 공주시를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발전시킴으로써 제2의 웅진시대가 예고되는 셈이다.

‘금강의 어제와 오늘전’ 공주시 전시회에서는 금강의 물길과 자연환경, 역사와 문화는 물론 삶의 모습까지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강을 다라 흐르는 애환과 추억, 사연과 설화가 담겨진 사진 속에서 금강 정신을 재발견하고 미래를 향한 가치까지도 탐색하길 기대한다.

한종구 기자 sunfl19@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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