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충청 사람들-김수진 특보, 4대 총선 인연 50여년 영원한 DJ맨 자처, 인재추천·DJP연대 등 숨은 그림자역 충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 총재가 92년 12월 대선 유세에서 김수진 특보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 총재가 92년 12월 대선 유세에서 김수진 특보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어떤 대통령에 비해 끊임없는 공부와 노력, 국민과 민족·평화· 통일에 몸바친 훌륭한 지도자이신데…”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최측근으로 50여년간 숨은 그림자 역할을 맡았던 충남 논산출신의 김수진 특보. 충혈된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김 특보는 논산 갑구지구당 선전부장을 맡았던 26세때 김대중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4대 국회의원 선거때부터 모시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반했다고 할까, 아니면 혼을 빼았겼다”

그만큼 김 전 대통령의 인격과 지도자로서 존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7대 국회의원 선거 때 목포에서 부정선거 음모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했으며, DJ 계파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등 국회의원 비서로 활동한다. 이후 지구당 개편대회, 전당대회, 대선후보 선출 등을 통해 충실하게 임무를 맡으면서 신임을 받는다.

한때 대한항공과 인천공항공사에서 교육원장과 상임고문 등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DJ의 정치적 행보에 따라 다시 정치로 복귀한다.

87년 대선 땐 평민당 연수원부원장, 조직국장을 맡아 활동한뒤 97년 대선에서 승리한뒤 총재 상임특보로 활동한다.

“당의 성격상 호남인물이 많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지만 김대중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 배워야 되겠다는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DJ가 가진 정계, 종교계, 여성계의 엄청난 인맥과 각계의 의견청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밝혔다.

DJ가 대중적 정치인으로 촉망을 받은 것은 3선개헌 반대 시국강연이 있던 효창운동장 유세. 함석헌, 장준하, 윤보선 등 24명의 쟁쟁한 연사 중 맨마지막으로 나선 DJ는 17분의 연설을 위해 사흘동안 호텔에서 피나는 연습을 했다. 김 특보만을 데리고 대원호텔에서 연설과 녹음은 물론, 청중의 박수시간까지 계산하는등 철두철미하게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정치인으로서 운명을 좌우할 명연설로 우뚝 자리잡게 됐다는 비화를 소개했다.

“정말로 숨은 노력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정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고 술회했다.

충청출신이다보니 자연스레 당의 인물추천과 조직을 맡은 김 특보는 불모지 개척에 헌신한다.

“차령산맥을 넘지 못하면 대선에서 이기지 못합니다”

최대의 정치적 과제였던 집권은 DJP(김대중-김종필)연대로 대선에서 승리한다. 이를 위해 김 특보는 역대 선거를 분석해 수도권에서 차령산맥을 넘지 못하는 투표성향을 DJ에게 직보한다. 서부벨트에서 이기지 못하면 대선승리가 없다는 논리를 제시해 충청권 인사들과의 두터운 교분을 연대로 이끌어 내는데 실력을 발휘했다.

효자였던 김 전 대통령은 어머니 몰래 보신탕을 먹고 싶어할 때 김 특보를 불러 살짝 외부로 함께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일부에서 “보상받은 것도 없지 않느냐. 실익을 챙기지 못한 모자란 사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 특보는 “국회의원할 2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동지적 입장을 넘어 웃분을 모시는데만 정성을 기울였다”고 영원한 DJ맨을 자청했다.

김 특보는 김 전 대통령이 평화와 통일에 드넓은 길을 개척했던만큼 남북통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서거하신 민족적 지도자에 대해 슬품과 절망을 표시하며 먼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구재숙 기자news777@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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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새해를 맞아 지방 순시행사로 대전을 방문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왼쪽)가 김수진 특보(왼쪽 두번째)와 담화를 나누고 있다.
1996년 1월 새해를 맞아 지방 순시행사로 대전을 방문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왼쪽)가 김수진 특보(왼쪽 두번째)와 담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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