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의 선택은?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들고온 `보따리`의 얼개가 드러나면서 북핵 논의가 일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관련국들간 개괄적으로나마 `정보공유`가 이뤄진 단계라는 게 정통한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최대 관전포인트는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이 과연 어떤 답을 들고 나왔는지다.

미국이 그동안 일관되게 `비가역적 비핵화`를 요구해온 만큼 북한이 어떤 수위와 내용으로 `화답`했는지에 따라 북핵 논의의 향방이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간 수차례 "공은 북한 코트에 넘어가 있다"며 압박해왔다.

일단 미 국무부와 우리 정부 소식통들의 발언들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입장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방송 인터뷰에서 "분명히 이번 방북은 우리가 기대할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일찌감치 선을 긋고 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부 고위소식통도 "미국으로부터 (구체적으로)디브리핑을 받아야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들로 추론해볼 때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경우 비핵화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미국측과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관측통은 7일 "비핵화는 1994년 사망한 김일성 주석의 유훈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관계정상화 등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을 것"이라며 "드러나지 않은 플러스 알파가 있을 수 있지만 당장 북측에 태도가 변화했다고 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흐름과는 달리 미국 조야의 저변에 흐르는 기류에는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는 국무부의 대언론 브리핑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당초 미국은 "`비가역적 비핵화`에 동의(agree)해야 한다"(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고 요구했으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에는 "국제사회의 의무들을 이행하겠다는 의지(willingness)를 보여야"(로버트 우드 국무부 부대변인) 북한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측 요구의 수위가 `동의`에서 `의지`로 톤 다운 된 셈이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북한과의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종의 `사전정지`를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물론 미국은 계속 6자회담 내에서의 양자대화를 강조하며 북.미 직접대화를 거부하고 있으나 협상의 형식적 틀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양자대화를 하겠다는 쪽에 확실한 무게감이 실려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북한이 내놓은 답이 비록 기존의 입장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이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북핵 협상의 흐름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공`이 북한 측으로부터 다시 미국으로부터 넘어온 것이다.

한 소식통은 "김정일 위원장이 클린턴에게 적대시 정책 포기를 전제로 우리도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진정성있는 발언을 했다면 이는 `의지`로 볼 수도 있다"며 "결국 선택은 미국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 복잡하게 돌아가는 대내외적 정세 속에서 미국이 내심 북한과 협상에 나선다는 입장을 정리하더라도 당장 북미대화에 시동을 걸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핵`과 `여기자 석방` 문제에 분리대응한다고 강조해온 미국으로서는 여기자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곧바로 북미대화에 나서는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동안의 대북협상의 `학습효과`가 있는 터라 또다시 덜컥 나섰다가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다닐 가능성을 경계하는 시각도 나온다.

여기에 현재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입장과 맞물려 협상 틀을 둘러싼 `샅바싸움`도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있다. 개성공단 유모씨와 일본 납치자 문제로 비판론에 직면한 한국과 일본정부의 입장도 두고봐야할 변수다.

따라서 미국의 선택은 곧 성사될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간 면담과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관련국들과의 의견조율을 거친뒤 주말을 넘겨 가닥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