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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재발견 - 중앙시장 (下)

2009-02-25기사 편집 2009-02-24 06:00:00

대전일보 > 사회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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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美제품 유통 ‘양키시장’ 인기…특화·시설정비 등 제2도약 준비

첨부사진11960년대 중앙시장 인파(사진 위), 깔끔하게 정비된 생선골목 현재 모습

중앙시장은 단지 하나의 커다란 시장은 아니다. 중앙시장 안에 기능을 분담한 크고 작은 시장들이 각각 구역을 나눠 자리 잡았다. 대전역에서 원동 사거리까지, 대흥교와 홍명상가를 잇는 구간에 약 11만2000㎡ 넓이인 드넓은 중앙시장은 9개의 상설시장과 대형상가 세 개, 먹자골목, 의류·홈패션·그릇·기물·수입상품·미싱 등을 취급하는 약 4200개의 점포와 노점상, 역전시장 등으로 형성돼 있다.

오래전 헐려 중앙주차장이라는 유료주차장이 자리 잡은 곳에 있던 중앙극장 주변은 ‘양키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까지 대전에 고급상품만을 취급하는 백화점이 없었을 때 이곳은 대전의 상류층을 상대하는 시장이었다. 대덕구 장동에 있던 미군부대 등지에서 흘러나온 미제물건과 외제상품들은 물론 드러내놓고 팔 수 없는 물건도 원하기만 하면 교묘하게 위장한 다락에서 나오는 곳이었다. 규제가 심했던 양주, 양담배뿐만 아니라 플레이보이 등 미국 도색잡지도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양키시장 뒤 닭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등을 파는 먹자골목은 손님을 부르는 활기차고 왁자지껄한 호객소리와 함께 대낮에도 고기를 안주삼아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던 곳이다. 하교한 학생들도 허기진 배를 이곳에서 채우곤 했다. 예전 같지 않지만 지금도 이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시장 통로 좌판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사이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잡화점들이 자리 잡았다. 생선골목이 바로 인접해 있음도 물론이다.

원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기지시장’으로도 불리던 도매시장이 별도의 블록을 형성해 자리 잡고 있다. 삼남지방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싼 값의 도매가격으로 물건을 대량 거래했다. 또 양장점, 양복점, 양품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도 했다. 역시 대전 시내는 물론 삼남지방을 상대로 옷감을 대량으로 도매, 옷감을 뜻하는 일본식 말 ‘기지’를 붙여 기지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곳곳마다 대전역 또는 버스정류장까지, 집앞에까지 물건을 운반해주고 삯을 받는 지게꾼, 우마차꾼이 흔했다.

원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수많은 혼수전문, 이불전문 가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블록을 형성해 영업을 했다. 상인들이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 다리미로 목선이나 소매 주름을 칼처럼 잡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곳이다. 현재는 예전보다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혼수전문, 이불 상점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바로 옆 원동초등학교(현재 대전동구청) 앞길에는 헌책방이 즐비했다. 지금은 몇 군데 남지 않은 이 헌책방 골목에만 들어서면 원하는 책을 다 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참고서, 교과서, 영어 잡지나 일본어 번역서적, 고서·한서까지 없는 책이 없는 책방골목이었다.

명절이 임박해오면 설빔, 차례상, 각종 잔칫상 준비를 위해 대전 시내와 인근 지역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장을 보러 나오던 곳이 중앙시장이었다. “장보러 가야겠다”고 하면 중앙시장이었다. 사람들을 불러모은 뒤 “애들은 가라!”고 소리치는 약장수, 방물장수나 각종 물건을 지고 다니며 파는 행상, 노점도 흔한 곳이 중앙시장이었다. 또 컴퓨터 동영상이나 영화 같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요즘처럼 흔치 않던 시절, 중앙시장은 인근에 사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도 신기한 물건을 볼 수 있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터’였다.

동구 신안동에서 태어나 대학 입학 전까지 인근 초·중·고교를 다녔다는 작가 추만호(54) 씨는 “취학 전은 물론이고 초·중·고 학생시절에도 방과 후 놀이터는 중앙시장이었다”고 회상한 뒤 “친구 부모님들 대부분이 시장 상인이었고, 성장기에 거쳐야 할 각종 놀이나 자극을 다 중앙시장에서 겪었다. 중앙시장이 나의 모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주부 이선희(43·대전 서구 둔산동) 씨도 “어릴 적 어머니가 중앙시장에 장보러 간다고 하면, 지금 보면 조잡한 물건이겠지만 당시로선 신기해 보이는 것들을 얼마나 사올까 궁금해 하며 대문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회상했다.

대전 중앙시장이 이처럼 대전 시민들 생활의 중심에 있었고, 또한 중부권의 물류기지 역할은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그 기능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었다. 그 징조는 이미 1970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9년 12월 대전-서울 구간 개통에 이어 1970년 7월7일 서울에서 부산까지 428㎞ 전 구간이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이다. 불도저식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여 만 2년도 안 돼 전 구간 개통을 본 경부고속도로는 당시 단군 이래 최대의 공사로 불리며 자동차 시대의 개막, 전국토의 1일 생활권 시대 개막 등 최고, 최대 수식어를 동원해가며 국토개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경부고속도로는 그러나 곧바로 대전 중앙시장의 기능을 약화시키지는 않았다. 아직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고, 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망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의 기능을 눈에 띄게 약화시킨 것은 1985년을 전후해 시작된 마이카 붐과 대전 둔산 신도시 개발로 인한 대형할인점의 대거 등장 등이다. 마이카 붐으로 승용차가 급증하면서 자가운전자들은 주차하기 힘든 곳은 가지 않으려 했다. 주차하기 힘든 곳에 중앙시장도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이후 각종 도로 및 철도를 중심으로 한 전국 교통망의 눈부신 발전은 중앙시장이 중부권 물류기지 역할을 하는 것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부권 물류기지에서 대전 시민의 시장으로 기능과 역할이 축소된 중앙시장은 90년대 초 둔산 신도시 개발로 인해 동구와 중구에 몰려 살던 중산층 시민들이 둔산 신도시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이주하자 원도심의 시장으로 더욱 역할과 기능이 줄어들었다. 둔산 신도시에는 백화점 못지않은 화려한 매장 분위기에다 싼값의 다양한 물건, 편리한 주차기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외지 대기업 소유의 대형할인점들이 속속 들어섰다. 중앙시장의 쓸쓸한 퇴조에는 1990년대 이 같은 요인이 거의 절대적으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일 한낮에 가보면 시장 안 통로들은 깨끗하게 정비돼 있지만 과거처럼 상인들이 손님을 부르는 큰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오가는 이들도 많지 않은 중앙시장. 건어물거리·한의약거리·공구거리 등 여섯 개의 특화거리와 자유도매시장·중앙메가프라자 등 여덟 개의 단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차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예전처럼 물건을 사려는 손님들이 몰려오기를 기다리는 중앙시장. 이 곳에 대한 향수가 거의 없는 젊은층을 불러 모으는, 활기 넘치는 중앙시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시장의 변신이 기대된다. <글 류용규·사진 빈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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