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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錦江 충청인의 삶의 젖줄 - ② 금강과 문화

2009-01-21기사 편집 2009-01-2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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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 비단 물결 구비구비 ‘찬란한 문화 꽃’

첨부사진11900년대 초의 강경시장 전경. 금강은 문물이 모이고 흩어지는 교류의 거점으로서 천혜의 생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가 생성되고 발전하는 토대가 돼왔다.

천리 비단 물길, 금강(錦江)은 충청 역사문화의 원류(源流)이자 보고(寶庫)다. 금강이 빚어내는 천혜의 자연환경은 선사시대에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토대였다. 395.9㎞의 긴 유로(流路)는 북으로 금북정맥(錦北正脈), 남으로 금남정맥(錦南正脈) 사이의 내륙을 가로 지르며 그리 높지 않은 산지와 구릉지대를 포용한다. 상류에선 감입곡류(嵌入曲流)의 구불구불한 골짜기를 만들어내고 하류에서 강과 바다와 만나는 익곡(溺谷)의 여유로운 풍경을 빚어낸다. 상류부터 하류까지 분지와 평야지대를 펼쳐내고 그 곳을 통해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흩어진다. 생산활동과 문화의 번성이 비례하듯, 풍요의 터전인 금강 유역은 왕성한 문화활동의 본류를 이룬다. 낮은 곳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의 여유로움과 금강 유역의 풍요로움은 곧 독특한 문화 생성과 창조의 터전이 된다.

선사시대부터 금강은 사람들에게 최적의 생활환경을 제공했다. 상류인 전북 무주부터 하류인 군산에 이르기까지 금강 유역에는 집터, 무덤, 고인돌 등 40여개의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시대 유적이 분포돼 있다. 이는 금강이 선사시대부터 본류와 각 지류를 중심으로 방대한 생활 터전이었음을 입증하는 지표다.

죽어서도 여유의 기품과 풍요의 안락함을 누리고 싶어서 일까. 금강 유역에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고분군도 발굴되고 있다. 대체로 백제 왕도인 공주, 부여와 논산, 부여, 익산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토광묘, 석축묘, 옹관묘 등 다양한 고분 형식을 보이고 있다. 금강 유역에 고분이 대규모로 밀집돼 있는 것은 금강이 제공하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번성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금강과 불교는 1400여년 공존의 시간을 함께 했다. 백제가 불교를 수용한 이후, 웅진과 사비 백제시대에서 가장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고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에서도 금강을 중심으로 불교문화가 융성했다. 삼국시대의 금강지역 불교 문화유적은 공주, 부여에 집중돼 있다. 공주지역의 대통사지, 금학동사지, 수원사지와 부여의 정림사지, 왕흥사지, 군수리사지 등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공주 갑사, 연기 연화사, 옥천 용암사, 영동 영국사와 고려시대의 논산 개태사, 청주 흥덕사 등 사찰과 다양한 석탑, 불상 등은 현대에서도 금강권 관광문화 활성화의 귀중한 자산이다.

금강은 유교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3대 유교문화권의 하나가 금강 권역이다. 16세기 중반까지는 이 지역 출신 사림(士林)이 기호학파의 한 축을 형성하다가 17세기 중반부터는 연산, 회덕, 청주, 공주 등을 중심으로 호서유학(湖西儒學)의 중심권이 형성된다. 당시 호서유학은 학문과 사상의 기상 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에서도 영남권과 경기권을 압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향교(鄕校) 뿐만 아니라 서원(書院)과 사당(祠堂)이 대거 분포하고 있는 것은 금강 유역에서의 유교문화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금강은 산지와 분지, 평야지대를 아루르며 천혜의 군사요충지 역할도 했다. 금산의 금성산성, 옥천의 고리산성과 노고성, 보은의 매곡산성, 대청댐의 인근의 구룡산성, 대전의 계족산성, 공주의 웅진성, 부여의 사비도성 등 수 백여개의 산성과 전적지가 흥망성쇠의 역사를 묵묵히 웅변해 준다.

이와 함께 공주 선화당(宣化堂)과 포정사(布政司), 부여 동헌(東軒), 청주 동헌, 홍산객사(鴻山客舍) 등 다양한 고건축물이 산재해 있고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토속신앙, 두레 등 농·어업에 기반한 생활풍습, 풍요와 안녕을 기원했던 민요 등 민속예술양식 등이 전해온다.

또 강을 중심으로 폭포와 소(沼), 샘, 강과 맞닿아 있는 바위와 벼랑 등에 얽린 수 만가지 설화는 금강의 오랜 역사가 풀어내고 있는 문화적 유산이다.

‘금강 살리기’는 개발사업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보존, 계승되고 재창조되는 ‘금강 문화 살리기’의 도도한 물길이어야 한다. 그것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금강이 문화 생성과 발전의 자양분을 제공해왔던 것처럼 다시 금강을 통해 충청 정신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정신문화를 일깨우는 원류이자 성장과 번영의 젖줄이어야 한다. <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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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1960년대의 대전 갑천. 짐을 들고 나무 다리를 건너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