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도 부러워 할 손끝의 정교함

동탁은잔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동탁은잔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찬란했던 백제의 700년 중흥기 속에서 금속공예의 기술과 예술성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화려한 꽃을 피웠다. 백제는 앞선 중국의 금속공예기술을 받아들여 백제인 특유의 예술세계 속에서 한 차원 높은 문화로 승격시켰고, 이를 바다 건너 일본까지 전파해 일본의 금속공예기술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백제인의 뛰어난 금속공예 솜씨는 여러 차례 발굴된 ‘초국보급’ 유물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동탁은잔

백제 특유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표면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은제잔인 동탁은잔(銅托銀盞)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 왕비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산봉우리 모양의 잔 뚜껑에는 산과 산 사이 골짜기에 노닐고 있는 봉황과 나무, 연꽃잎 등이 빼곡히 새겨져 있고 잔의 표면에는 물의 흐름인 듯한 부드러운 무늬가 너울거리고 그 밑으로 세 마리의 용이 잔의 하단에 묘사된 연꽃을 둘러싸면서 호위를 하는 듯하다. 화려한 문양으로 새겨진 동탁은잔은 다시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진 잔받침에 올려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탁은잔은 백제금동대향로와 마찬가지로 연꽃 장식과 봉왕, 산악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뚜껑 중앙의 연꽃과 손잡이를 제외하면 동탁은잔은 전체적으로 ‘봉황-산악도-류운문-연꽃과 용’의 구성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백제대향로의 수직적 구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 비록 잔(盞)과 향로라는 기물(器物)상의 차이가 있고, 동탁은잔의 장식 내용이 백제대향로보다 조금 고식(古式)이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구성상의 일치는 양자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게다가 백제대향로나 동탁은잔에 장식된 이러한 구성은 중국의 향로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다. 이것은 위와 같은 구성이 전통적인 중국적 구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 동탁은잔은 525년 무령왕(武寧王·501-523)의 무덤에 수장된 유물로 대향로보다 제작시기가 앞선다. 따라서 백제대향로를 제작한 장인들은 동탁은잔이 수장되기 전에 실물을 보았거나 동탁은잔의 구성 내용을 익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동탁은잔이 수장된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백제대향로가 제작되었으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왕흥사지 사리용기

“백제 금동대향로 이래 최대 발굴 성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최대의 찬사를 받으면서 우리 곁으로 온 청동제 사리합(舍利器·사리를 담는 그릇).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3단의 사리기(청동제 사리합, 은제 사리호, 금제 사리병)가 2007년 10월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발굴됐다. 왕흥사지 중앙부 목탑 자리 밑에서 장방형의 심초석이 발견됐는데 그 남쪽 끝단에 위치한 사리공에 원통형 청동 사리함이 원형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이 중 사리기에는 백제왕 창, 즉 위덕왕이 “정유년(丁酉年.577년) 2월15일에 죽은 왕자를 위해 목탑 찰주를 세웠다”는 사찰 창건과 관련되는 사정이 명문(銘文)으로 기록돼 있어 백제사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했다.

황금 사리병과 은제 사리외병이 담긴 청동 사리함에는 백제 위덕왕(재위 554∼598)이 577년 죽은 왕자를 기리기 위해 절을 세웠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또 사리함 부근에서는 공양품으로 보이는 금제 목걸이·귀고리·팔찌와 각종 옥·구슬류 100여점도 출토됐다.

학계는 청동제 사리합은 중국에 전래된 인도식 사리용기를 원형으로 삼아 6세기쯤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학자들은 또 공양품이나 사리기는 명백히 백제 자체 기술로 제작됐으며, 그 수준이 대단히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에서 제작된 것을 수입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부여 능산리 절터 백제금동대향로를 백제 장인들이 제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보여주는 명쾌한 방증자료가 된다고 덧붙였다.

쌀알보다 작은 유리구슬과 손톱 만한 금공품은 백제인의 정밀 세공술(細工術)을 엿보게 하고 금제 귀고리의 방울장식은 가는 선과 금 알갱이를 정교하게 눌러 붙이는 이른바 누금(鏤金) 기법을 구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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