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에 선 검투사들의 숨소리가…

서기 72년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의 궁전 터였던 늪지대에 세운 ‘콜로세움’은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거대한 네로의 동상이 이곳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콜로세움의 공식 명칭은 ‘플라비오 원형극장(Flavio Amphithetre)’이고, 둘레의 길이가 527m, 높이가 48m이며, 8년간의 건축기간을 통하여 아름다운 원형극장을 완성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건축 기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콜로세움의 1층 기둥양식은 전형적인 도리아식이고,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그 아름다움이 다양하다. 4층으로 지어진 콜로세움에는 아치로 장식된 80여개가 넘는 문이 있어 5만 명이 동시에 입장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황제가 드나드는 입구가 따로 있으며, 신분에 따라 자리도 구분되어 있다. 이곳에서 싸워야 했던 검투사들은 노예, 전쟁포로, 죄수 등이었고, 검투사들은 죽는 순간까지 오로지 싸움에 충실해야 했다. 검투사끼리의 싸움만이 아니라 다양한 맹수들과도 싸워야하는 검투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게임은 그것을 즐기려는 황제와 귀족들의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순간에 승자는 멀리 중앙에 앉아있는 황제를 올려다본다. 황제의 엄지손가락이 내려가면 (It`s thumb down) 죽이는 것이고, 황제의 엄지손가락이 올라가면(It`s thumb up) 상대 검투사를 살리는 것이다. 검투사들의 목숨이 황제의 손가락 끝에 달려 있었다.

현재의 콜로세움은 지진으로 붕괴되어 그 당시의 모습을 완전하게 상상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는 미로처럼 분할된 방들과 그 위에 지붕이 있었으며, 지하에는 검투사들의 대기실과 무기창고, 그리고 동물들의 우리가 있었다. 폐허가 되어 상상하기 힘든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영화 ‘글래디에이터’ 속으로 들어간다. 할리우드 골든 글로브 최우수 수상작이며, 영국 오렌지 브리티시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경기장의 문이 열리고 용감한 검투사가 등장을 한다. 맹수가 달려들고 창과 칼이 부딪치는 콜로세움 중앙에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막시무스 장군이 검투사로 변신하여 황제에게 도전을 한다. 정의와 용기가 있고, 사랑과 슬픔이 분노와 복수로 연결되는 전율과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콜로세움에서 나와 로마의 중심부로 들어서는 길목에 베네치아 광장이 있다. 베네치아 광장을 지나 그리스의 수학과 로마의 공학이 결합하여 건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판테온 신전’을 찾았다. 어린 시절 미술책에서 보았던 사진 그대로 수수한 모습이다. 이집트 산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통돌 기둥 사이를 지나 신전 안으로 들어가 둥근 아치형으로 된 내부를 보는 순간 판테온을 보고 건축의 기적이라 말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조로운 둥근 원통 구조 위에 직경이 같은 반구를 뒤집어씌운 모양으로 신전은 가로와 높이가 똑같이 43.2m이고, 벽의 두께가 6.2m나 된다. 그만큼 튼튼하게 기초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모든 풍파를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달팽이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베드로 성당을 설계하던 교황들은 성당의 둥근 지붕을 판테온 신전보다는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려고 온갖 건축가와 기술을 동원했지만 결국 판테온 신전보다 1.3m 짧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판테온 신전은 그만큼 수학적으로나 공학적으로 신비의 비밀을 지니고 있고 또 로마 건축 가운데 그 오랜 세월을 오로지 종교적 신전으로 변함없는 세월을 지켜왔다. 초기에는 모든 신을 섬기는 곳이었으나 나중에는 기독교 유일신만을 섬긴 신전이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으로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에서 어린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다. 그러나 이곳 ‘스페인 광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음식물을 먹지 못하게 금지되어 있어 경찰관들의 제재를 받는 곳이다.

18세기에는 화가들이 이곳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풍경화도 그렸지만 특히 선남선녀들을 대상으로 한 인물화를 그렸는데 그 당시 화가의 모델이 되기 위하여 이곳에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광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과거 교황청의 스페인 대사관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크 양식의 137개 계단 위에는 교회가 있다. 그래서 이 계단의 본래 이름은 ‘언덕위의 삼위일체 교회로 오르는 계단’ 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에 세계적인 명소가 된 스페인 광장의 한 복판에 서서 세계에서 몰려온 많은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지켜보며, 분명 밝고 아름다운 미래의 세계를 기대해도 된다는 확신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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