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숭고한 선열 만나러 떠나자

칠백의총
칠백의총
봄의 금산은 산벚꽃과 진달래로 치장해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답다. 하지만 금산에는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이달 중순이나 돼야 산은 꽃으로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금산은 한적하다. 한적한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고 자녀들에게 호국정신을 가르치기 좋은 곳이다. 지금의 금산은 교통의 발달로 접근성이 좋지만 6·25전쟁 당시만 해도 오지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이곳에 백령성을 세워 신라를 견제했고, 임재왜란에는 이곳에서 최초의 육전승전을 거두기도 했다.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 이곳에서 힘을 키우고 나라를 지켰던 것. 그 길을 안내한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최초의 육전승전지인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에 위치한 이치대첩지(梨峙大捷地·충남도지정기념물 제154호)는 예로부터 대둔산의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과 전략의 요충지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7월에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적이 군량미의 현지보급을 꾀해 적장 고바야가와가 2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 곳을 넘어 호남평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권율(權慄) 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함께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 재를 넘으려는 왜적을 섬멸해 호남으로 진출하는 적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막아냈다.

행주대첩과 진주대첩보다 앞서 임진왜란 최초로 육지에서 승전보를 울려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임진왜란 전승지는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의 칠백의총(사적 제105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금산에는 전라도 침입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1만5000여명의 왜병이 주둔하고 있었다.

의병장 조헌은 영규대사의 승군과 합세해 1592년 8월 18일 아침 금산 연곤평에서 필사의 전투를 치렀고 끝내 칠백의사 모두 순절했다.

그러나 일본군도 많은 피해를 입어 전라도 침입을 포기하고 금산에서 철수했다.

그해 8월 22일 조헌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이 시체를 거둬 한 무덤을 만들어 칠백의총이라 했다. 1603년에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를 세우고 1647년에는 사당을 건립해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외에 눈벌싸움에서 순절한 제봉 고경명과 횡당촌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의 막좌 및 사졸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1952년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다.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뒤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의 백령성은 삼국시대 후백제 초댕왕인 견훤(甄萱·재위 900~935)이 완산(完山)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하고 백령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령성은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에 위치해있고 둘레가 약 200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과거 이곳은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해 영동·옥천에 이르는 전략상 요충지였다.

금산군의 외곽성(外廓城)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쪽은 거의 허물어져 있다. 성내에서는 백제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며, 산봉우리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진악산(進樂山)의 관앙불봉(觀仰佛峰)의 봉수와 서로 교신했다.

6·25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상흔도 남아있다. 전쟁당시 빨치산 부대의 요새였던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와 건천리 일원 백암산(해발 654m), 전적지역 약칭으로 불렸던 육백고지가 그곳이다.

육백고지는 1950년 말쯤 군·경과 빨치산 사이에 여러 달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민간인과 군인, 경찰 등 276명이 전사하고 빨치산 2287명이 숨지는 등 치열하고 처참한 전투가 벌어졌다.

금산은 면적의 70%가 산이다. 겹겹이 둘러친 야트막하고 부드러운 산이 이 작은 고장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깃든 호국영령의 넋이 지금도 살아숨쉬는 듯하다.

또 하나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금산 IC에서 개삼터까지 가다보면 도로이름이 인삼로, 약초로, 개삼로, 개안길로 이어진다. 큰길은 ‘로’로, 작은 길은 ‘길’로 표기돼 있어 찾아가기 쉽다.

개삼터에서 보석사로 향하다보면 육백고지전적비가 나오고, 여기서 남이자연휴야림으로 가다 보면 대둔산을 지나 칠백의총까지 갈 수 있다.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적벽강과 대둔산 등 휴양지가 있어 주말여행으로는 손색없다.<송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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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고지 기념탑
육백고지 기념탑

송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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