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 고분군,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명성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백제의 애
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1400년을
버텨왔다. 석탑은 목조건물의 양식
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모방
이 아닌 창의적인 조형미를 보여준
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
호)과 함께 현존하는 백제 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
는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백제의 애 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1400년을 버텨왔다. 석탑은 목조건물의 양식 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모방 이 아닌 창의적인 조형미를 보여준 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 호)과 함께 현존하는 백제 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 는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다.
3. 부여(능산리고분군, 정림사터,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문화의 숨결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곳, 부여는 백제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123년의 사비시대를 보낸 곳이다. 때문에 백제금동대향로, 정림사지오층석탑, 궁남지, 부소산성 등 그 당시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부여에서 가장 먼저 들리게 되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분 7기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왠지 모를 아늑함이 느껴진다. 모두 도굴된 상태로 발견돼 공주의 무령왕릉처럼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능산리 1호분 안에는 백제 고분에서 보기 드문 사신도가 남아있다. 이는 고분 안에 벽화를 그리는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 당시 두 나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부여 시내 중심길인 중앙로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걷다보면 우뚝 솟은 석탑 한채를 볼 수 있다. 바로 정림사터 오층석탑(국보 제 9호)이다. 중국 역사서인 ‘북사’에는 백제는 탑이 많다고 기록돼있지만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도 역할을 했던 부여에는 오로지 이 탑밖에 남아있지 않다. 정림사터 한가운데 자리한 탑은 백제 석탑의 표본으로 불릴 만하다. 높이가 8m가 넘는 결코 작지 않은 탑임에도 불구하고 육중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날씬해 보이는데 이는 2층 몸돌의 크기가 1층의 몸돌의 반으로 줄어들고 위로 올라가면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이기 때문이다.

정림사터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궁남지(사적 135호)가 위치한다. 궁남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 조원으로 유명하다. 둥근 연못 한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고 못 주변으로 버드나무가 죽 늘어서있다. 신라의 안압지 보다 약 40년이 앞서 만들어진 궁남지는 안압지의 모형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궁남지는 특히 여름철, 연꽃이 활짝 피면 일대가 모두 장관을 이룬다. 매년 7월말, 연꽃축제가 열려 연꽃 감상을 물론 연꽃차 만들기, 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부여시 남동쪽 금성산 기슭으로 93년 자리를 옮긴 국립부여박물관은 1000여점이 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산경문전 등 8종류의 무늬전돌등 전시된 국보급 유물들이 백제시대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특히 박물관은 28일부터 특별전을 열고 최근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돼 화제를 모았던 황금사리병, 명문이 적힌 청동외함, 진단구 등 유물 일체를 전시할 예정이다. <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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